‘이상한’ 건설기능등급 산정기준 개정, ‘직업전망 불씨’마저 꺼질라

2026-03-27 13:00:06 게재

직종별 편차 무시한 허수인 ‘획일적 작업가능 일수’ 적용 … 개정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 숙의 필요, 활용방안 법제화도 시급

2026년에 개정·공표된 ‘건설근로자의 기능등급 구분·관리 등에 관한 기준’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능등급 산정의 기반인 ‘경력연수 산식’에 비상식적인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직업전망의 불씨가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능등급제는 건설기능인의 ‘시공경험 활용’과 ‘직업전망 제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한편으로는 등급보유자에 대한 고용·임금 측면에서의 ‘활용방안이 법제화’돼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규모의 등급보유자를 공급’해야 한다.

2021년 5월에 기능등급제가 시행되면서 현장 수요에 대해 충분한 등급보유자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등급보유자에 대한 활용방안을 법제화하지 않아 쓸모없는 제도로 겉돌았다. 제때 활용방안을 법제화했다면 제 역할을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활용방안 마련은 지연됐고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연구를 통해 기능등급제 부진의 원인을 활용방안 부재가 아닌 산정기준의 오류에서 비롯된 현장 수용성 부족으로 진단했다. 그 결과 핵심적인 처방으로서 ‘연간 작업가능 일수(186일)’를 경력연수 산식의 분모에 대입하는 2026년 개정에 이르렀다.

이 경우 가장 치명적인 잘못은 제도 내부의 논리적 정합성이 붕괴된다는 점과 다수 직종의 고급 및 특급 인원에 대한 충분한 공급이 불가능해져 제도의 작동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허수에 불과한 ‘연간 작업가능 일수 186일’을 각 직종의 편차를 무시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획일적으로 대입했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 2017년 공공현장에서 만난 타일시공업체 대표는 “이 현장의 실질적인 소장은 김 반장인데, 서류상의 현장대리인은 건축기사자격증을 대여해 준 기술인이고 대가로 연간 500만원을 지급한다. 기능등급제를 도입해 그 돈을 김 반장에게 주고 명의도 일치시켜 책임감 자존감 품질 모두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2년 경기도의 기능등급제 시범사업 현장에서 건설업체 관리자와 건설노동자에게 기대되는 효과를 물었다. 먼저 “일할 사람도 없는데 이제야 왔냐”고 호통을 쳤고, “그래도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이라며 반가워했다.

#. 2023년 특성화고 학생에게 기능등급제를 설명하고 고급이나 특급이면 현장소장이나 건설업체 설립요건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학생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렇다면 좋아하는 기능을 갈고 닦아 기능장도 되고 나중엔 건설업체를 꼭 차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능등급제는 숙련인력에게 체화된 시공경험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품질·안전·생산성 등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노동자의 숙련도별 처우개선을 통해 직업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청년층의 진입과 숙련인력 육성을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2021년에 도입됐다.

◆숙련 활용과 전망 제시한 기능등급제 ‘반쪽짜리’ 도입 = 옥외에서의 생산과정은 표준화가 어려워 사람을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고 다양한 여건에서의 시공경험을 축적해야만 온전한 숙련을 완성할 수 있다. 숙련인력에게 체화된 시공경험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려면 심적·물적 보상과 함께 적절한 지위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독일 건설현장의 마이스터다. 국내 사례로는 삼성건설 기능마스터와 LH 품질명장을 들 수 있다. 숙련인력에게 원수급자 관리자 또는 발주자 품질관리자 지위를 부여해 생산성 향상, 품질 제고, 하자 저감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해당 건설업체 또는 발주기관의 결정으로 언제든 중단될 수 있으므로 국가 차원의 제도화가 필요했다.

건설기능등급제 추진TF 개최와 치열한 숙의 국토교통부와 건설근로자공제회 주도로 2018년부터 3년여에 걸친 기능등급제 추진 TF와 1년여의 준비연구 중 다양한 전문가와 18개 유관기관이 참여해 치열한 찬반 논의와 다양한 숙의를 거쳐 기능등급제를 설계했다. 사진 건설근로자공제회 제공

2017년 일자리위원회에서의 논의를 계기로 3년여에 걸친 TF와 1년여의 준비연구를 거쳐 제도를 설계해 마침내 2021년 5월에 기능등급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기능등급제가 미칠 영향에 대한 일부의 우려가 있어 시범사업을 거친 이후로 활용방안의 법제화를 미뤘다.

2022년에 경기도의 협조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숙련인력이 실질적인 현장소장 역할을 수행했으나 현장대리인 배치기준인 기술인등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골조소장 설문조사 참조) 고급·특급 기능인도 현장대리인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기능등급제가 청년층에게 직업전망을 제시해 진입을 촉진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활용방안의 법제화가 지연되자 실망이 표출됐다. 건설근로자공제회(공제회)는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연구를 통해 기능등급제 부진의 원인을 활용방안 부재가 아닌 산정기준의 오류에서 비롯된 현장 수용성 부족으로 판단했다. 결국 ‘이상한’ 산정기준의 개정에까지 이르게 됐다.

◆숙의 산물 ‘기능등급 산정기준’, ‘등급별 분포표’로 검증 = 기능등급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등급보유자에 대한 활용방안의 법제화와 함께 현장의 수요에 상응하는 ‘등급별 기능인의 공급’이 필요하다. 이를 구현하는 시스템이 바로 ‘기능등급 산정기준’이다. 필자는 이전의 TF와 논의에 이어 2019년에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과 함께 공제회 연구용역 과제에 참여해 ‘기능등급 산정기준’과 ‘활용방안 법제화’ 연구를 담당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전문가와 18개 유관기관이 참여해 치열한 숙의를 거쳐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등급산정 기준을 만들 수 있었다.

첫째, 근간이 된 자료는 개인별 정보의 식별이 가능한 2000년부터의 퇴직공제데이터베이스(퇴직공제DB) 중 ‘신고일수’를 활용했다. 퇴직공제 적용범위가 점차 확대돼 왔으므로 실제 근로일수보다 신고일수가 작을 수밖에 없었으나 객관적인 경력연수를 산정하기에 적합했다.

둘째, 등급별 기능인 공급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참여 협회와 노조의 추천을 받아 자문위원 128명을 위촉했다.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상적인 ‘직종별 등급별 분포’를 이끌어 냈다.

셋째, 직종별 편차를 반영해 모든 직종에 이상적인 분포가 나올 수 있도록 ‘직종별 상대평가 방식’(직종별 총 신고일수/연간 직종별 신고일수)을 채택하고 경계 값(3년 9년 21년 이상)을 도출할 수 있었다.

넷째, 이러한 등급산정 기준이 60개 직종마다 충분한 규모의 등급별 기능인을 공급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직종별 등급별 분포표’를 작성했다. 참석한 모든 협회와 노조 그리고 전문가들의 동의를 거쳐 비로소 2021년 ‘기능등급 산정기준’을 확정했다.

다섯째, 경력이 포함된 모든 등급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특급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기존 경력연수 산식에 의하면 분모의 ‘연간 직종별 신고일수’를 갱신(81.7일→93.4일)하는 것만으로도 특급의 비중을 낮출 수 있었다.(2020년 12.1%→2023년 6월 16.6%→갱신 12.4%)

◆‘연간 작업가능 일수’ 특급 공급에 한계, ‘등급별 분포표’ 비공개 = 개정 후 등급산정 기준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가장 치명적 결함은 ‘연간 작업가능 일수’의 적용이다. 이것은 실제 근무일수도 신고일수도 아닌 허수에 불과하다. 경력연수 산식의 분자에는 퇴직공제DB의 ‘총 신고일수’를 놓고, 분모에는 허수인 ‘작업가능 일수’를 대입해 특정 개인의 경력연수를 도출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둘째, 상이한 직종에 획일적인 ‘연간 작업가능 일수 186일’을 대입해 직종별 편차를 무시한다. 직종별 특성에 따라 퇴직공제DB(2020년)의 연간 직종별 신고일수가 최소 34일에서 최대 116일까지 편차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을 186일로 획일화함으로써 산정체계가 망가진다.

셋째, 분모에 직종별 연간 직종별 신고일수보다 훨씬 큰 허수인 186일을 획일적으로 대입함으로써 직종별 경력연수가 작아져 상위 등급의 공급이 부족해진다. 특히 특급이 없는 직종도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현장대리인 배치기준과 건설업체 설립요건에 해당하는 기능인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당 직종의 건설업체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거나 직업전망 제시가 불가능해진다. 이점을 우려해 특급의 경력연수를 ‘21년 이상’에서 ‘15년 이상’으로 낮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연간 직종별 신고일수와 186일 간 격차가 너무 커 해결하기 어렵다. 해결하기 위해 직종마다 등급별 경력연수를 달리한다면 제각각이 돼 누더기가 될 것이다.

넷째, 비대해진 특급 비중을 낮추기도 어렵다. 시간이 경과돼 분자의 총 신고일수가 증가하면 186일 대신 더 큰 허수를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등급산정 기준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시금석인 ‘직종별 등급별 분포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2024년 연구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개정된 산정기준에 의한 ‘60개 직종별 등급별 분포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아산)을 통해 요구했고 올해 3월에도 정보공개청구했으나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기존의 등급산정 기준과 개정된 기준을 비교해 본 결과, 남는 질문은 ‘왜 멀쩡한 산정기준을 굳이 바꿨을까?’ ‘왜 직종별 등급별 분포표를 비공개할까?’다.

다행인 것은 개정된 산정기준의 적용시기를 2027년으로 규정해 1년 유예한 것이다. 2026년에 논의기구를 구성해 다양한 전문가와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숙의과정을 거쳐 개정의 타당성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 미뤘던 활용방안의 법제화도 시급하다. 직업전망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되살려야 한다.

심규범

현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

건설근로자공제회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