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쟁추경에 지방정부 추경 속도전
고유가 지원금 매칭에 편성 불가피
'명분' 커졌지만 '재정부담'도 확대
정부가 26조2000억원 규모 ‘전쟁추경’을 확정하면서 지방정부도 추가경정예산 편성 압박에 본격적으로 직면했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 핵심 사업이 지방비 매칭 구조로 설계되면서 사실상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 추경 이후 전국 지방정부들이 잇따라 추경 편성 또는 검토에 들어갔다. 이번 추경은 고유가 대응과 민생 안정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특히 4조8252억원 규모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핵심 사업이다.
문제는 재원 구조다. 해당 사업은 국비 80%, 지방비 20% 매칭 방식으로 설계돼 전국 지방정부가 약 1조3000억원 수준의 재원을 분담해야 하는 구조다. 여기에 지방교부세 4조6793억원이 추가 교부되면서 지방정부는 세입 증가를 반영한 ‘세입경정 추경’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쟁추경 명분” 지방도 속도 = 통상 지방선거가 있는 해 상반기에는 선거 영향 등을 고려해 추경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동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으로 정부가 이례적으로 추경을 단행하면서 지방정부도 대응을 미루기 어려워졌다.
이미 부산과 울산은 정부 추경 이전 선제적으로 추경을 편성했고, 서울과 경기도도 수천억원 규모 추경을 검토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기초지방정부 역시 울산 북구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추경 논의가 본격화되는 흐름이다.
특히 고유가·고물가 대응이라는 정책 명분이 분명해지면서 그동안 추경을 주저하던 지방정부들도 편성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인천에서는 정치권 압박까지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인천시장이 속한 국민의힘 인천시당이 “민생 지원 추경을 즉각 편성하라”고 요구하며 시를 압박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나타났다.
◆지방재정 압박 가중 = 하지만 추경 확산 이면에는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부담은 매칭 재원이다. 고유가 피해지원금만으로도 전국적으로 약 1조3000억원 규모 지방비가 추가 투입돼야 한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이미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충청권 한 지방정부 관계자는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며 “과거 민생지원금 사례 때와 마찬가지로 지방비 부담을 10%로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 부담도 문제다. 짧은 기간 내 추경을 편성하고 집행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력·절차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행안부가 ‘성립 전 예산’ 활용 등을 통해 추경 없이도 일부 사업을 선집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도 이런 부담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고유가 지원금처럼 대규모 사업은 결국 추경 없이는 집행이 어려운 구조다.
수도권 한 지방정부 관계자는 “교부세 증가로 재원이 일부 보강되지만 매칭 부담과 집행 압박이 동시에 작용한다”며 “추경은 불가피하지만 재정 여력과 속도를 맞추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분·부담 모두 커져 = 결국 이번 ‘전쟁추경’은 지방정부에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가져왔다. 하나는 민생 대응이라는 명분을 얻은 것이다. 고유가 대응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정책 목적이 분명해지면서 지방정부도 적극적 재정 투입에 나설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이 때문에 연임에 도전하는 단체장들이 적극적으로 추경 편성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부담도 함께 커졌다. 예산 매칭 구조와 단기간 집행 압박이 겹치면서 지방재정과 행정 모두에 상당한 부담이 가중됐다. 특히 지방선거 사무까지 떠안게 될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부담이 만만찮다. 한 지방정부 관계자는 “이번 추경은 지방정부에 ‘추경을 해야 하는 이유’와 ‘추경을 해야 하는 부담’을 동시에 던졌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