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중남미 농업 협력, 소농의 ‘희망 사다리’

2026-04-02 13:00:04 게재

최광호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비행기로 하루가 넘는 대장정 끝에 도착한 파라과이 아순시온. 한국과는 낮과 밤이 정반대인 이곳에서 만난 현지 농업 관계자 한 분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한국 기술로 만든 퇴비를 사탕수수밭에 뿌렸더니 수확량이 30% 넘게 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짧은 인사였지만 10여년 협력의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최광호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이곳에서 열린 ‘제5차 한-중남미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KoLFACI) 총회’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6년 만에 대면 개최한 이번 총회에는 14개 회원국의 농업 전문가들이 모여 협력 경험을 공유하고 인류 공동 과제인 먹거리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를 다졌다. 2014년 출범 이래 농촌진흥청과 중남미 국가들이 일군 성과를 구체적인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어 더 뜻깊었다.

중남미는 전 세계 가용 경작지의 약 23%, 수자원의 31%를 보유한 세계의 식량창고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중남미 농가의 약 80%는 영세 소농이지만 이들이 보유한 농경지는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KoLFACI가 단순한 지원 이상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소규모 고효율 농업 모델을 전수해 자본이 부족한 소농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한 것이다.

기후 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 중남미는 엘니뇨 현상으로 지역별로 농작물 생산량이 최대 30%까지 급감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oLFACI를 통해 개발된 가뭄 내성 강낭콩 품종은 기후 변동성을 완화하는 핵심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볼리비아와 온두라스 등에서 품종 등록을 마쳤고 시범 농가에서는 기존 대비 20% 이상 안정적인 수확을 기록하고 있다. 이 품종들과 물 관리 기술의 결합은 잦은 가뭄을 겪는 중남미 소농의 실질적인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가 왜 지구 반대편 국가들과 협력에 공을 들이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번 총회에서 확인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글로벌 식량안보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것이다. 중남미는 한국 곡물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전략적 파트너다. 이 지역의 농업 생산성은 국제 곡물 가격 안정과 직결되며 우리 식탁 물가의 안전판이 된다.

둘째 농업기술 시장의 확장이다.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는 세계 스마트팜 시장에서 중남미는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KoLFACI를 통해 쌓인 한국 기술에 대한 신뢰는 우리 농기계·종자·비료 기업이 6억 명 규모의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든든한 무형 자산이 될 수 있다.

셋째 글로벌리더십 실천이다.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도약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이 같은 성공 경험의 공유는 국제사회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소프트 파워로 작용한다.

총회 마지막 날 차기 의장국으로 페루를 선출하며 새로운 3년의 항해를 준비 중이다. 특히 눈에 띈 건 드론 방제, 기상 데이터 기반 작황 예측, 인공지능 병해충 조기 탐지 등 지능형 농업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이 한국의 앞선 농업 모델을 이식하는 적응기였다면 앞으로 10년은 이러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도약하는 확산기가 될 것이다.

이제 중남미는 더 이상 머나먼 땅이 아니다. 디지털 농업으로 연결되고, 기후 위기라는 공동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전략적 파트너다. 농촌진흥청은 KoLFACI를 통해 중남미 대륙 곳곳에 한국형 농업기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움직일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틔운 이 협력의 씨앗이 전 세계의 풍요와 번영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