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에 매년 1100명 학교 중퇴, 학교 밖 아이들 교육 위한 법제화 절실
송파에서 학교 밖 아이들 보듬는 최연수 한빛청소년재단 상임이사
최연수 상임이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픈 서른한 살 청년이 있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송파 거여 ˙ 마천 판자촌 아이들을 따스하게 품으며 없던 길을 새로 냈다. ‘학교 밖 선생님’으로 34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예순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더디 가도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드는 활동가로 길 위에 서있다. 최연수 한빛청소년재단 상임이사의 이야기다.
대안교육기관인 ‘사랑의 학교’와 ‘세움학교’, 송파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공동생활과정 ‘한빛마을’, 청소년국제교류사업 ‘한빛글로벌’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는 왕따 등 여러 이유로 마음을 다친 청소년이 상처를 딛고 다부진 청년으로 자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섰다.
지금까지 2000여명의 청소년들과 인연을 쌓아왔다. “인간 관계 때문에 받은 상처는 관계 속에서 회복해야 해요.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최근엔 포스코청암재단에서 수여하는 제20회 포스코청암상 봉사상을 수상했다.
Q. 교육학 박사이며 공교육 교사와 학원 강사 경험도 있더군요. 거여 / 마천 판자촌 아이들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1994년 송파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마천 YMCA에서 자원봉사로 중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어요. 3명으로 시작해 50명으로 늘어날 만큼 호응이 컸어요. 저도 신이 나서 열정을 쏟았죠.
거여마천 판자촌 길거리상담소 시절
가르치는 아이 중에 장기 결석자 사연이 궁금해 거여 마천 판자촌을 찾았는데 충격을 받았죠. 부모님이 안 계시는 그 아이 집이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더군요.
퇴학생, 소년원 출신 등 방치된 채 벼랑 끝에 선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고 5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쉼터를 만들고 길거리 상담소를 열었어요.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쉼터에서 라면을 무제한 제공하니 많은 아이들로 바글거렸어요. 숨은 아지트마다 찾아다니며 간식을 꾸준히 나눠주니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더군요. 자연스럽게 대안학교와 그룹홈 운영으로 이어졌습니다.
Q. ‘당당한 자립’을 목적으로 10대가 자라서 성인이 돼 가정을 꾸리기까지 단계별 케어를 체계화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살려면 고교 졸업장은 필수라며 아이들 설득해 검정고시를 치게 해요. 졸업장만으로는 안정적으로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용접, 설비 같은 기술을 익히도록 했죠. 10년의 현장 경험이 쌓이면 창업을 유도합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후에는 좋은 부모가 되도록 가이드해요. 어릴 때 부모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 ‘부모 교육’에 신경 쓰고 있어요. 글로벌 시대라 우리나라 밖에도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걸 경험시켜 주고 싶었어요. 몇 년 전부터 청년 창업을 돕고 몽골, 베트남 등 동남아 여러 대학, 기관들과 국제 교류사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30년 현장 경험이 밑바탕이 돼 저희는 ‘자아 발견하기-정체성 갖추기-전문가로 서기-가정 세우기–글로벌 리더로’ 이렇게 5단계 비전을 실천중입니다.
Q. ‘학교 밖’으로 밀려난 10대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운영중입니다. 왕따 피해 등으로 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과거에는 아이들의 상처가 가난이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또래들과 관계의 문제 때문에 생깁니다. 요즘엔 집집마다 외동 아이가 많아 공주나 왕자처럼 귀하게 커요. 허나 학교에 가면 상황이 달라지죠. 또래들 사이에 암묵적인 서열화가 생겨요. 제 경험상 초등 고학년이 되면 한 반에 1~2명은 따돌림을 당하더군요. 잘난 척 해서, 행동이 굼떠서... 왕따의 이유는 다양합니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공존하는 교실 분위기를 못 견뎌 피해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죠.
송파구에서만 매년 약 1천100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둡니다. 피해 학생 부모들은 쉬쉬하며 감추기만 하는데 중퇴자들은 갈 곳이 없어요. 저희는 중고 통합형 서울형대안교육기관과 고교 과정의 서울시교육청위탁형대안학교를 운영중인데 이미 정원이 꽉 찼고 입학 대기자까지 있어요.
자해 위험이 높은 학생들이라 세심하게 돌봐야 해요. 캠프나 도보여행 등의 야외 활동, 요리, 영상 제작 등 다채로운 체험활동을 통해 일상에서 소소한 성취의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 줘야 하죠.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수년이 걸립니다. 우리의 따스한 보살핌과 스스로의 극복 의지가 어우러져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은 케이스가 꽤 많아요.
아이들과 함께(2008년)
하지만 제대로 케어받지 못한 채 방치된 학교 밖 아이들은 운둔형 외톨이가 돼버려요. 소중한 대한민국의 아이들입니다. 국가는 이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죠
Q.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 교육 관련 법안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대안 학교가 학교 밖 아이들 케어의 마지노선입니다. 안타깝게도 대안학교는 교육도 복지의 영역도 아닙니다. 대안 교육 학비는 학부모가 세금 공제 혜택조차 받지 못해요. 이곳에 근무하는 교사의 업무 강도는 셉니다. 아이들 교과 지도부터 야외 체험 활동, 개인 상담과 학생부 기록 같은 행정 처리까지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교사 월급은 월 250만 원입니다. 10년 째 임금이 동결됐죠. 열정과 능력있는 젊은 교사들이 이 일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선 생계의 안전성이 중요해요. 학교 밖 청소년 교육에 대한 법제화는 꼭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공을 들이는 건 ‘청년 사장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성인이 된 후 경제적 자립은 중요해요. 정부의 창업 지원 제도 활용, 외국과의 교류 등 다방면으로 시도중입니다.
송파가 강남 3구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요. 많이 배우고, 부유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베풀며 서로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려야 해요. 그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