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숨은규제’ 251건 걷어낸다…“경제 회복 마중물”
정부, 109개 공공기관 참여한 합리화 방안 확정
액화수소 기준완화·입찰감점 삭제 등 애로 해소
정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던 공공기관의 ‘숨은 규제(유사행정규제)’ 251건을 전격 정비한다.
법령에 명시된 행정규제는 아니지만, 공공기관의 내부 지침이나 업무 관행에 의해 실질적인 장벽이 되었던 그림자 규제들을 걷어내 민생경제 회복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기관 합동으로 마련된 ‘기업현장 공공기관 숨은규제 합리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재정경제부와 중소기업 옴부즈만, 그리고 109개 공공기관이 협업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한 결과물이다.
◆공공기관의 ‘갑질 지침’ 정조준 = 공공기관은 검사·인증, 조달·입찰, 지원사업 선정 등 중소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행정규제기본법상 관리되는 ‘공식 규제’ 외에도,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내부 규정이나 지침이 기업들에게는 법률 이상의 강제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러한 ‘숨은 규제’가 고금리·고유가 상황에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시장 진입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정기조인 ‘민생·안전과 공정·상생을 위한 규제 합리화’의 일환으로 이번 대책을 수립했다.
이번에 정비되는 251건의 과제는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특히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는 조달 방식 합리화(123건) 분야가 핵심이다.
우선 사업·입지 등 진입규제 합리화 관련이 44건이다.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던 낡은 기준들이 대폭 개선된다. 예를 들면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액화수소 충전시설 설치 시 방출구 위치 제한과 사업소 경계 거리 기준을 기체수소 수준으로 완화한다. 그동안 액화수소는 기체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컸다. 이번 조치로 설치 비용과 부지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남부발전 등 발전 5개사는 공급자 자격심사 시 과거 ‘부도·화의 이력’에 대해 최대 5년간 부여하던 감점을 삭제한다.
재정 상태를 신용평가등급으로 판단할 수 있음에도 과거의 이력으로 재기를 막는 과도한 중복 규제를 없앤 것이란 설명이다.
◆중소기업 연구개발 역량강화 지원 = 중소기업의 R&D 역량 강화를 위한 비용 지원도 강화된다. 모두 39건이다. 한국환경공단은 물 산업 시험·검사 수수료 감면 대상을 클러스터 입주기업에서 전체 중소·중견기업으로 대폭 확대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은 상생협력기금을 활용해 중소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 비용을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산업 전반의 AI 고도화 정책과 보조를 맞춘 조치다.
123건의 조달방식 합리화 방안도 추진한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금융 부담 경감이 주를 이룬다. 한국가스공사 등 6개 기관은 물품 제조·구매 시 하자보수보증금률을 기존 5%에서 조달청 기준인 3%로 낮춘다. 국가철도공단 등 16개 기관은 기업이 전액 부담하던 조달입찰 인지세를 기관과 공동 부담(5:5)하거나 기관이 전액 부담하도록 전환한다.
업무처리절차 간소화도 45건 추진한다. 주로 행정 편의주의적 절차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공영홈쇼핑은 입점 기업의 대금 지급 기간을 ‘정산마감 후 10일’에서 ‘2일’로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정산 지연에 대한 소상공인의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후속 조치다. 한국관광공사 등은 ‘원클릭 서류제출 플랫폼’을 구축해 기업이 일일이 종이 서류를 스캔해 업로드하던 번거로움을 없애기로 했다.
◆‘깜깜이 집행’ 방지해야 = 이번 대책의 특징은 정부가 일방 하달한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접수된 실제 기업현장의 목소리를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수용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우수 과제의 경우 참여하지 않은 다른 공공기관들에도 확산을 유도할 계획이다. 재정경제부 이우형 공공윤리정책과장은 “공공기관의 규정 하나가 중소기업에게는 넘기 힘든 장벽이 될 수 있다”며 “이번 합리화 방안이 고유가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민생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확정된 과제들이 각 기관의 내부 의결 절차를 거쳐 즉시 시행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올해 하반기 중 실제 이행 여부를 정밀 점검할 계획이다. 또한 공공기관 내 ‘기업성장응답센터’를 활성화해 상시적으로 숨은 규제를 발굴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다만 규제 완화가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 완화가 공공기관의 안전 관리 소홀이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로 이어지지 않도록 투명한 공정 관리 가이드라인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1회성 정비가 아니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숨은 규제 발굴 실적’을 강력하게 연계,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