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공급망 병목 ‘규제유예 카드’로 대응
수입절차 대폭 단축, 관세 부담 완화
정부, 기업활동 숨통 틔우기 총력전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수급 불안과 공급망 병목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한시적 규제유예’ 카드를 내놨다. 통상적인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시행령과 지침을 신속히 개정해 기업의 수입과 생산활동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비상경제 대응을 위한 공급망 병목 해소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나프타 등 기초 원료 수급 악화가 국민 생활 밀착형 제품(포장재 의약품 등)의 생산차질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눈에 띄는 것은 수입단계의 규제 혁파다. 그동안 페인트나 PE수지 원료를 해외에서 직접 수입하려면 유해성시험 등에 최소 3개월이 소요됐다. 정부는 수급차질이 우려되는 물질에 한해 유해성 시험자료를 ‘시험계획서’로 대체 허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원료반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물류비 부담 완화책도 시행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우회 항로를 이용하며 급등한 운임 상승분은 관세 과세가격에서 제외한다. 수입업체의 세금 부담을 줄여 국내 물가상승 압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에너지와 원료 등 주요 품목은 입항 전 통관 조치를 완료해 도착 즉시 공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상시 통관 체계’를 구축한다.
나프타 기반의 포장재 수급 불안에 대응해 생산현장의 규제도 한시적으로 풀린다. 식품이나 위생용품의 경우 대체 포장재를 사용할 때 의무 표시사항을 직접 인쇄하는 대신 ‘스티커 부착’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원재료가 조금만 바뀌어도 인쇄된 포장재를 폐기해야 했다. 이번 조치로 자원 낭비를 줄이고 신속한 공급선 교체가 가능해졌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분야에는 ‘패스트트랙’이 도입된다. 나프타 등 석유화학제품 원료 부족으로 인해 품목 허가를 변경해야 할 경우 다른 심사에 우선해 처리한다. 특히 포장재 변경에 따른 현장 GMP 심사를 서류 검토로 대체해 통상 1~2개월 걸리던 절차를 즉시 처리 수준으로 앞당긴다.
정부는 직접적인 재정투입 대신 물량배분을 중개하는 적극행정도 병행한다. 아스팔트 가격 급등에 대응해 시급성이 낮은 도로 보수 공사는 일정을 연기하도록 행정지도하기로 했다. 포트홀 수리 등 안전 관련 현장에 물량을 우선 공급한다.
차량용 요소의 경우, 재고가 남는 기업과 부족한 기업 간의 거래를 정부가 직접 중개하고, 필요시 공공 비축 물량을 방출한다. 비료용 요소 역시 농협의 공급 물량을 조절하고 2분기 공급 가격 안정화를 지원해 농업인들의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규제 개선 방안을 4월 중으로 신속히 시행하되, 비상 상황이 종료되면 유예 조치도 즉시 종료할 방침이다. 다만, 이번 유예 과정에서 나타난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평가해, 해당 규제가 실제로 필요한지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적극적 행정만이 공급망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이라며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기업 현장의 활력을 유지하는 데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중동전쟁 영향과 에너지 절약에 따른 소비 제약 가능성에 대비해 보완 방안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