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외환보유액

2026-04-06 13:00:22 게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000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3월 말 외환보유액은 한달 새 40억달러 가까이 줄며 지난해 4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중동전쟁 여파로 원달러환율이 급등하자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용 실탄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외환보유액은 4236억6000만달러(약 641조원). 2월과 비교해 한 달 새 39억7000만달러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정부의 상호관세 발표로 원달러환율이 뛰자 당국이 나서 방어했던 지난해 4월(-49억9000만달러)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3월 외환보유액 40억달러 급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는 2월 말 기준(4276억달러) 세계 12위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9위였던 순위가 올해 1월 10위로 밀렸다. 이어 한달 만에 두계단 더 하강했다. 중국 일본은 물론 대만 홍콩보다도 적다.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3월 기준으로는 순위가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환율이 치솟은 것은 중동전쟁 여파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여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대거 매도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기본적으로 달러강세 탓이라지만 유독 원달러환율 상승속도가 가팔랐다. 지난달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치(달러 인덱스)는 2.9% 상승했다. 반면 원화가치는 그 두 배도 넘어 6.27% 하락(환율 상승)했다. 일본 엔화(-2.50%), 대만 달러(-2.53%) 등 아시아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절하 폭이 지나치게 컸다. 3월 평균 환율은 1492.5원으로 트럼프발 관세폭탄이 날아든 지난해 4월(1441.9원)과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월(1488.9원)보다 높았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고유가 충격에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이 외환시장 안정과 시중에 달러가 마르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쌓아두는 ‘달러 비상금’이다. 유사시 식품이나 에너지 등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수입품을 사들이고 단기 외채를 갚는 데 쓰는 외화자산이다. 중동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대외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는 판에 외환보유액이 급감해 걱정스럽다.

중동전쟁으로 급등한 유가가 물가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오일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2%는 시작일 수 있다. 석유류 가격이 9.9% 뛰며 물가를 0.39%포인트 끌어올렸다. 그나마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로 억눌러 이 정도에 머물렀다. 유가상승 여파는 이달부터 물가에 더 짙고 깊게 반영될 것이다. 1500원을 넘어 1530원을 오르내린 환율은 시차를 두고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대한 해법은커녕 이란 에너지 시설 타격을 경고함에 따라 ‘고유가 장기화’는 현실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이란이 공식화한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징수 또한 유가에 반영되는 구조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이미 국내 석유·가스 수급 차질과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공급망 불안으로 나타났다. 중동전쟁 전개 및 고유가 지속 상황에 따라 환율이 16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동 전쟁여파가 경제성장률은 낮추고 고유가·고환율로 물가를 뛰게 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치밀한 ‘달러 비상금’ 관리가 요구된다.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가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인식된다. 무리한 환율방어는 외환보유액 감소와 시장 불안 확대라는 독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고환율·고물가, 4월이 더 걱정스럽다

공교롭게도 한은 총재의 임기가 만료돼 교체되는 시기다. 금융·외환당국은 긴밀히 협조해 외환보유액을 관리하고 미국·일본 등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외환시장 안정 장치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

4월부터 한국이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된 것은 환율 방어에 호재다. 단순한 외국인 자금 유입을 넘어 한국 금융시장의 신뢰도와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의 26조2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번 추경은 위기의 파도에서 국민의 삶을 지켜줄 방파제”라고 강조했다. 지금 ‘전쟁추경’과 에너지 비상 수급계획만 필요한 게 아니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방파제, 시장 안정화 조치도 절실하고 시급하다.

양재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