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 국면 들어선 미·유럽 동맹
트럼프, 유럽 불참에 나토 회의론 … 유럽은 불법·무모한 전쟁이라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동안 트럼프의 불만이 유럽의 방위비 분담 부족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유럽이 미국의 중동 군사개입을 돕지 않는데 왜 미국이 유럽을 지켜야 하느냐”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나토 역할을 가치와 원칙의 동맹이라기보다, 반대급부가 필요한 거래로 보는 인식이 한층 노골화한 셈이다. 이는 미국이 유럽 안보를 더 이상 당연히 떠안아야 할 의무가 아니라, 미국 국익에 따라 취사선택할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유럽은 정반대 시각을 보이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자신들과 상의 없이 시작된 이번 전쟁이 불법적이고도 무모하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가 지난 1년간 유럽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대폭 줄였으며, 유럽 지도자들을 조롱하고 그린란드 장악까지 거론한 상황에서 유럽 각국이 미국을 적극 도울 정치적 여지도 크지 않다. 다만 유럽은 전면 동참은 거부하면서도 미국이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포르투갈·그리스 등의 기지를 군수 지원과 이란 타격에 활용하도록 하는 등 제한적 지원은 이어갔다. 미국이 요구한 해군 파병과 같은 공개적 군사 개입에는 선을 긋되, 동맹 파탄으로 비치는 상황도 피하려는 절충적 태도에 가깝다.
쟁점의 핵심은 나토의 성격이다. 유럽은 나토가 유럽과 북미를 방어하는 상호방위조약일 뿐, 미국이 선택한 중동 전쟁까지 자동으로 지원하는 체제는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나토 집단방위 조항이 발동된 것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한 차례뿐이었고, 당시 유럽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해 상당한 희생을 치렀다. 유럽이 트럼프의 “미국이 필요할 때 동맹은 없었다”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유럽 입장에선 미국이 동맹의 역사와 상호 책임의 기록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충성만 요구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 충돌이 단순한 말싸움을 넘어 동맹의 신뢰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도 나토 탈퇴는 의회 반대와 법적 제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지만, 조약이 유지되더라도 트럼프가 유럽 주둔 미군을 줄이고 동맹 공약의 신뢰를 흔들면 나토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유럽 역시 군 재건에 나서고 있으나, 미국 없는 자주 방위까지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갈등은 이란 전쟁 자체를 넘어, 미국이 더 이상 유럽 안보를 자국 핵심 이익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을 드러낸 사건이다. 프랑수아 에즈부르 파리 전략연구재단 특별고문은, “이제 신뢰는 남아 있지 않다. 이혼과 마찬가지로, 어떤 말은 한번 나오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갈등의 본질은 이란전 참전 여부가 아니다. 미국이 유럽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즉 나토 억지력의 유효성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데 있다고 WSJ은 진단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