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우리가 문제다, 트럼프가 아니라

2026-04-09 13:00:47 게재

2월 28일 이란 공격 개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어록 일부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겼다”(3월 3일). “이란은 끝났다. 지금 당장 엄청난 성공이라고 해도 된다”(3월 9일). “이기긴 했는데, 완전히 이기진 않았다”(3월 12일).

기자들이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물었다(3월 17일).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는 40% 이상 폭등했고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 당 4달러를 돌파했다. 트럼프는 답했다. “우리는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각국이 알아서 해협을 보호하면 된다.” 그는 덧붙였다. “전쟁이 끝나면 해협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 자연스럽게!

4월 1일 트럼프는 대국민 연설을 했다. 세계가 주목했다. 그는 말했다. “미국의 모든 군사 목표가 거의 달성됐다.” “앞으로 2~3주 동안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한다.” 이긴 전쟁을 왜 2~3주 더 해야 하는지 묻는 기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트럼프는 그들이 있어야 할 곳, 석기시대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연설이 끝나자 이란정부 대변인은 트럼프 연설을 “미친 말”이라고 일축했다. 미국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7%가 ‘트럼프에게 이란사태 해결을 위한 명확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지금도 트럼프 말이 신문과 방송 톱 뉴스다. 왜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가. 낯선 화법에 세계가 당황하고 있다. 실수인가, 무지인가. 둘 다 아니다.

당파적 믿음은 뇌의 감정회로가 결정

20세기 초중반 독일 지도자는 대중심리를 주무른 천재였다. 그는 뉘른베르크 당대회에서 집단적 도취감을 극대화시켰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어떻게 멀쩡한 독일 사람들이 저러고 있나, 해서 믿을 수 없다. 그는 국가 내부에서 적을 발견했다. 소수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고, 수용소로 끌고 가서 죽였다. 끝내는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우리는 그 끝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정치 리더가 자신의 국가에서 소수를 적으로 지목하는 거, 끝난 줄 알았다. 끝나지 않았다.

이런 포퓰리스트 파시스트의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는 건가? 1차대전 이후의 불안한 시기가 다시 찾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의 편중이 심하고 사람들 삶이 팍팍해진 게 원인이다. 이럴 때는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 파시스트에게 자신을 의탁하려고 한다”(홍성국 신간 ‘더 쎈 파시즘이 온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팩트체크에 흔들리지 않는다. 트럼프가 사실과 다른 말을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팩트체크는 이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성이 도착하기 전에 감정은 이미 결정한 상태다. “우리가 이겼다”고 했다가 “아직 안 이겼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라고 말해도, 느낌표를 세 개 찍어도 상관없다. 지지자 뇌는 그 말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의 온도를 읽는다. 트럼프 말은 논리가 아니라 체온으로 작동한다.

그건 미국 에모리대학교 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이 2006년 fMRI(기능성 자기공명 영상)를 갖고 한 연구로 설명된다. 웨스턴 교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정치적 자극을 준 뒤 뇌를 촬영했다.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 이성을 담당하는 뇌부위(배외측 전전두피질)는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다. 대신 감정회로가 먼저 켜졌다. 판단은 감정이 이미 내린 뒤였다. 이성은 사후에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만 쓰였다.

드루 웨스턴은 말했다. "당파적 믿음은 굳어진다. 사람은 새로운 데이터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리고 거짓말로 드러나도 상관없다.

왜 우리는 애초에 이렇게 만들어졌는가. 독일 출신 미국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것을 정확히 설명했다. 자유는 무겁다. 불안한 대중은 그 무게를 못 견디고, 적을 지목하고 질서를 약속하는 강한 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석기시대로 돌려보내겠다”는 트럼프 말은 국제법 위반이다. 그러나 오래된 포유류 뇌로 들으면 다르게 들린다. 알파가 적을 지목하고 집단을 보호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트럼프는 그 회로를 누른다. 정밀하게, 반복적으로.

이제 분명해진다. 트럼프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비이성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인간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를 그는 잘 알고 있다. 드루 웨스턴이 fMRI로 촬영한 그 뇌를, 에리히 프롬이 한 대중 심리학을, 그는 직관적으로 꿰뚫고 있다.

알파 원하고 적 필요로 하는 우리 문제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적을 지목하고, 불안을 증폭시키고, 자신을 구원자로 내세우는 정치가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들이 통하는 이유도 같다. 유권자 뇌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오래된 회로, 알파를 원하고, 적을 필요로 하고,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 반응하는 그 회로가 문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안에도 그 회로가 있다. 트럼프는 그걸 발명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그걸 가장 잘 읽은 사람일 뿐이다.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