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멈춰버린 가격, 반복되는 위기

2026-04-10 13:00:03 게재

중동전쟁으로 ‘에너지전환’ 시급성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기후위기’라는 먼 미래가 아닌 ‘에너지안보’라는 현재 요구에 좀 더 무게중심이 실렸다는 점이다. 에너지는 산업의 혈액과 같은 존재인 만큼 에너지 체제 전환은 새로운 산업 구조로의 혁신을 위한 타임라인도 함께 앞당긴다.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중동발 위기를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나아가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대한민국을 ‘녹색 제조 글로벌 3강’으로 도약시키겠다”고 화답했다.

문제는 ‘어떻게’다. 에너지안보 에너지위기를 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고질적으로 문제는 계속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바로 가격이 시장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구조로의 개혁이다.

최근 전기자동차 판매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에너지전환이 잘 되고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사는 건 단순히 기름값이 올라서가 아니다. 보조금이 있을 때 전기차를 사야 한다는 심리도 함께 작용했다. 전기차 보조금이 소진되면 판매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패턴은 국내외에 똑같이 반복된다. 실제로 독일은 2023년 말 예산 위기를 이유로 보조금을 조기 중단했을 때 이듬해 전기차 수요가 27.4% 급감했다. 가격신호 없는 전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시장에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하는데 이러한 순기능을 기대하기에는 이미 대한민국 전력시장은 비효율적인 구조로 고착화한 지 오래다. 배출권 시장도 다르지 않다. 배출권 가격이 너무 낮아 기술개발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보다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는 게 더 싼 구조라면 기업은 감축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사실 ‘가격’은 늘 언급하기 꺼리는 존재다.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에너지전환은 의지가 아닌 설계의 문제다. 그런데 설계는 누가 하는가. 결국 정치다. 그리고 정치는 가격이라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늘 눈을 돌려왔다. 위기가 올 때마다 에너지전환을 외쳤지만, 정작 전환의 토대가 되는 가격구조는 손대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촉발제만 바뀐 채 같은 위기가 반복된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에너지전환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는 다음 선거까지의 시간표로는 풀 수 없다. 가격이 진실을 말하게 하는 개혁은 단기적으로 불편하고 표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한, 위기는 또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정치인이 아닌 정치가가 필요한 이유다.

김아영 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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