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성 ‘폭 넓게’ 인정, 교섭분리 예외적 ‘허용’
노란봉투법 뒤 교섭분리 첫 ‘제동’
쿠팡CLS·SK에너지 등 4건 기각
지난달 1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처음으로 ‘기각’ 판단을 내렸다. 근로조건과 고용형태 차이가 뚜렷하지 않으면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기준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원청의 사용자성은 전반적으로 인정되면서 향후 원·하청 교섭 절차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울산·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하청 노조가 낸 교섭단위 분리 신청 9건 가운데 4건을 기각했다. 서울지노위는 이날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산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낸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기각했다. 다수 노조인 한국노총 택배산업노조와 별도로 교섭단위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지노위는 “다른 노조의 조합원들과 현격한 근로조건 및 고용형태상 차이가 없다는 점, 안정적·효율적 교섭체계 구축 및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와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법 시행일에 맞춰 교섭을 요구했고, 회사가 이를 공고하자 민주노총 측이 별도 교섭을 요구하며 분리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울산지노위도 SK에너지·에쓰오일·고려아연 하청 노조인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울산지노위는 “노조 소속 근로자와 다른 노조 소속 근로자 간 근로조건 고용형태 교섭관행 등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산업안전 의제에 대한 노조 간 이해관계의 유사성, 교섭단위 분리 시 노조 간 근로조건 격차 유발 우려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노동위 판단의 핵심 기준은 ‘현격한 차이’ 여부다. 차이가 없으면 단일교섭을 유지해 교섭 안정성을 확보하고 차이가 크면 분리를 허용하는 식이다. 다만 이번 결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점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다. 울산지노위는 “유지·보수 업무가 원청의 사업 운영에 필수적이고 안전관련 지침 및 위반에 대한 제재 등이 하청 소속 근로자에게도 적용된다”며 “작업개시 및 중지권, 안전시설 개선 권한 등이 원청에 집중돼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하는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했다.
쿠팡CLS 역시 하청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요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날 4건의 기각 판단 외 나머지 교섭단위 분리 신청 5건에 대해서는 전부 인용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지노위는 국민은행·하나은행·KB국민카드 콜센터 하청노조의 분리 신청을 모두 인용했다. 이와 함께 원청의 사용자성도 처음으로 인정했다.
서울지노위는 “콜센터의 고객상담 업무와 IT개발·시설관리 직종의 업무 내용, 근로자들의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 및 고용형태가 현격히 다른 점을 고려했다”며 “해당 원청이 악성 민원 차단 등 감정노동자 보호 조치와 관련한 교섭 의제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전남지노위도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가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서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신청을 인용했다. 건설노조는 지난달 10일 한전의 전체 하청 교섭단위에서 전력 설비 점검·보수·공사 및 고장 복구 등을 담당하는 배전사업을 분리해달라고 했다.
전남지노위는 “송변전·검침·고객지원·시설환경 유지관리 등 한전의 다른 자회사나 협력업체 사업 부문과 상이한 근로조건 및 작업환경”이 이유다. 동시에 “전력설비의 소유·관리 주체로서 작업공간에 대한 직접적 통제권을 가진다”며 한전의 사용자성도 인정했다.
충남지노위 역시 동희오토 하청 노조의 분리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날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신청 2건도 모두 인용됐다. 경북지노위는 포스코이앤씨, 제주지노위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 대한 공고를 인정했다. 결국 노동위는 ‘사용자성은 폭넓게 인정하되 교섭단위 분리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