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왕조실록 지켜낸 국립공원으로 역사여행을
김종식 국립공원공단 서부지역본부장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메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마지막 자막이다. 세조 3년 10월 21일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기도 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강원도 영월의 엄흥도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단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로 인기가 높아진 것이 또 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 내용이 ‘왕사남’에 소개되자 조선시대 역사공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부터 제25대 철종까지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서술한 472년의 역사 기록물이다. 정족산사고본을 기준으로 볼 때 1187책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위대한 유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국보로 지정했고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실록 편찬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빈틈없이 이루어졌다. 완성된 실록은 사고(史庫)라고 하는 국가 주요 서적을 보관하는 건물에서 보관했다. 조선전기에는 서울 춘추관과 충주·성주·전주사고 등 4곳에 분산해 보관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생해 춘추관과 충주와 성주사고에 있던 실록은 모두 소실됐다.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명산 국립공원과 함께한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은 어떻게 전란을 피했을까? 1592년 6월 전주가 위태로워지자 전라도 감사 이 광의 지휘하에 경기전 참봉 오희길 등이 잔도로 끊어질 듯 이어진 내장산 깊은 곳으로 실록을 옮겼기 때문이다. 신성한 존재를 다른 곳으로 모셔가는 것을 이안이라고 한다. 실록의 내장산 이안과 수호에는 △삼례찰방 윤길 △참봉 오희길 △태인 선비 안의와 △손흥록 △희묵 등의 승려 뿐만 아니라 이름을 알 수 없는 산골 백성 100여명 등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실록이 내장산에서 보존된 시기는 1592년 6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였다. 내장산 용굴암 은적암 비래암은 실록이 보관되었던 곳이다. 지금의 내장사 뒤쪽 계곡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바위절벽과 해발 600~700m 능선이 마치 장막을 친 듯한 특이한 지형이 나타난다. 좁은 계곡길이 아니면 누구고 접근할 수 없는 천혜의 장소다. 1971년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내장산을 떠난 실록은 정읍현 아산현 해주 등을 거쳐 묘향산 보현사로 이안됐다. 전란이 끝난 뒤 전주사고본 실록을 근거로 재간행됐고 사고는 깊고 깊은 산 중에 설치됐다. △평안도 묘향산 △강원도 오대산 △경상도 태백산 △강화도 정족산이다. 묘향산사고 실록은 후금의 위협을 피해 1618년부터 전라도 적상산성으로 옮겨졌다. 대전에서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마치 컵을 세워놓은 듯한 매우 가파른 산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이 해발 1027m의 적상산이다. 1975년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최근에는 급경사지 지형 낙차를 이용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기도 했다.
조선후기 실록을 보관한 사고는 정족산을 제외하면 모두가 오늘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에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란 절체절명의 순간 실록을 보존한 공간도 내장산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후기 300여년 동안 오늘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에서 온전히 관리되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삼키기 전까지는.
‘역사+자연’ 인구소멸 대응에도 도움
전라북도 전주 정읍 무주는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보존의 공간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독특한 국립공원 지형을 활용한 덕분이었다. 전주는 한옥마을과 음식으로, 정읍은 내장산 단풍으로, 무주는 덕유산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더해 전주 경지전에 있는 전주사고를 보고, 내장산 용굴암에 올라 임진왜란 기간 동안 실록을 보호한 조선 선비들을 상상해 보고, 덕유산으로 이동해서 적상산사고를 둘러보는 것은 어떤가?
조선시대 실록 보관장소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국립공원공단은 여러 여행사와 함께 실록 보존지역을 찾아가는 역사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국립공원 역사자원과 주변 관광명소를 연계한 상품은 다른 지역에는 없는 새로운 옷을 한벌 갖는 것이다. 우리 땅에 남아있는 소중한 역사 스토리와 자연 관광자원을 연계 활용한다면 관광객과 생활인구를 늘리고 인구소멸 대응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