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바꾸나

2026-04-13 13:00:02 게재

석유·가스 공급망 취약성 드러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가속화

잇따른 지정학적 위기가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중동전쟁과 우크라이나전쟁으로 기존 석유·가스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주요 경제권들이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러시아의 노르드스트림 천연가스관 차단은 세계 경제의 동맥을 조이는 일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제거한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3월 14일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에서 주요 에너지 시설 방향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미국이 이란 하르그섬을 타격한 지 몇 시간 만에 걸프 지역 석유 시설을 겨냥한 추가 공격으로 보이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현지 주요 에너지 시설 쪽에서 연기가 목격됐다. AFP=연합뉴스

“재생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란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가 태양광과 풍력, 원자력 등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IEA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가 세계 에너지 시스템을 재편하는 구조적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화석연료 의존이 만들어낸 취약성이 드러난 만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에너지 안보를 위한 필수 경로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전쟁의 여파로 전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롤 총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에너지 부족 사태는 1973년과 1979년, 그리고 2022년의 위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위기가 “에너지 지정학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부 기술은 다른 기술보다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바로 그런 경우다. 매우 빠르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 몇 달 내로 재생에너지로 방향을 전환하게 될 것이다.”

#석유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달 2일 자신의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에 ‘전쟁과 석유, 그리고 세계경제’라는 칼럼을 올렸다. 크루그먼은 1979년 이란혁명과 2026년 이란전쟁 위기를 비교했다. 그는 “이번 이란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1979년 이슬람 성직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충격보다 훨씬 덜하다”면서 그 이유를 분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번 경제충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로 주요 경제국들의 석유 의존도가 1970년대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는 사실을 꼽았다.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석유 집약도(Oil Intensity of GDP)’가 1970년대 이후 70% 이상 감소했다는 것이다. 석유 집약도란 석유 소비량을 실질 GDP로 나눈 값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오늘날 미국 경제 규모는 1970년대 후반보다 세 배로 커졌지만 석유 소비량은 50년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라고 밝혔다.

IEA, 석유 수요 정점 계속 앞당겨

#석유 수요의 정점이 앞당겨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규제 압박이 가해지면서,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모델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지난 10년간 석유 수요 증가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국조차 태양광과 풍력 등 보급이 늘면서 2025년에는 석유 수요가 감소했다.

영국 런던 소재 에너지 싱크탱크인 엠버(EMBER)는 지난달 18일 ‘에너지 안보의 여파: 화석연료 체제의 취약성에서 전기 기반 자립으로’라는 타이틀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지난 4년 동안 우크라이나전쟁과 중동전쟁 등 화석연료 위기가 두번이나 발생했다”면서 “이 위기는 석유 수요를 직접적으로 억제하는 동시에 석유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유인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IEA는 수년간 석유 수요의 정점 도달 시점을 계속 앞당겨 왔다. 10년 전만 해도 2050년 이전까지는 정점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IEA는 이후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하는 시점을 2030년대 후반으로 앞당겼다가 다시 2030년으로 전망을 수정했다. IEA는 이미 2026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을 하루 60만 배럴로 낮췄다.”

과거에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전기 기반 기술이 보급되고 있다. 엠버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 가격은 2022년 이후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고, 연간 태양광 설치 규모는 4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다. 배터리 가격은 36% 하락했으며, 전력망용 배터리 보급량은 7배 증가했다. 전기차 가격은 점점 내연기관 차량과 가격이 비슷해 지면서 그 판매량은 2022년 이후 두 배로 늘었다. 이제 전기 기반 기술은 이란전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규모 지정학적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에너지 전환 일등공신은 트럼프라는 역설

아주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는 일등공신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뚫고 또 뚫어라!(Drill, baby, drill!)”라고 외치면서 석유와 가스 생산을 독려한다.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기후정책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하지만 에너지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에너지 경제학자인 파트리스 조프롱 파리 도핀대 교수는 지난 4일 르몽드에 ‘의도치 않게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칼럼을 실었다. 조프롱 교수는 “트럼프식 외교와 중동정세가 결합하면서 에너지 시장에는 이전보다 훨씬 강한 불확실성이 형성됐다”라면서 “트럼프식 지정학이 만들어내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 전환은 이제 단순한 기후정책이 아니라 주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짚었다.

“산업 소비자들은 무엇보다도 예측불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한다. 중동전쟁은 2022년 우크라이나전쟁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중기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계획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탈탄소기술의 보험가치’라는 개념이 중요해 진다.”

‘탈탄소기술의 보험가치’란 경제주체들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의미한다. 화석연료의 가격과 공급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원자력이나 태양광, 풍력 등은 모두 예측가능한 비용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조프롱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와는 달리 점점 더 많은 경제주체에게 에너지 전환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꼬았다.

태양광과 풍력이 석유와 석탄을 대체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태양광은 해가 떠야 발전할 수 있다. 풍력은 바람이 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간헐성과 전력의 저장 문제, 초기 투자 비용 같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광과 풍력은 초기설비 이외에는 외부로부터 자원을 들여오지 않아도 된다. 지정학적 충격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다는 강점이 있는 것이다.

조프롱 교수는 “결국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라면서 “그것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선택, 다시 말해 보험과 같은 성격의 투자라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환경보호 넘어 국가안보를 위한 일

우리나라 경제는 중동 석유에 70% 이상을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경제는 물가상승과 경상수지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제 환경보호를 넘어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다.

우리 강토의 3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화창하고 맑은 날이 흐린 날보다 많다. 풍력과 태양광 잠재력이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나라다. 우리의 2차전지와 전기차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결단과 속도 뿐이다.

바야흐로 땅에 묻힌 화석연료의 양이 아닌 재생에너지 기술로 에너지 강국 여부를 가르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미래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