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석 칼럼
95센티미터에서 본 도시
나는 운전대를 잡고 주택가 도로를 지나고 있다. 저 멀리 횡단보도가 보인다. 그 앞 차도와 보도의 경계에는 가지런히 다듬어진 쥐똥나무 관목이 줄지어 서있다. 대략 1m 남짓 높이다. 그 너머에 어른이 서 있다면 물론 알아볼 수 있다. 상체가 관목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1m도 안되는 키 작은 아이가 서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관목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아이가 차도로 뛰어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찰나까지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가속페달을 밟고 있을 것이다.
우리 도시는 늘 위에서 보기 좋게 디자인되지만 정작 삶은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높은 곳에서 보면 도시는 질서정연하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선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다.
도시를 어디에서, 누구의 눈높이에서,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이 질문에 따라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95cm는 만 세살 아이의 평균 키 높이다. 그 높이에서 바라보면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횡단보도는 너무 길고 신호는 짧다. 아이 걸음으로 절반도 건너지 못했을 때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한다. 아이는 뛰고 자동차의 소리는 등을 떠민다. 보도블록의 작은 턱과 틈에 한번 발이 걸리면 그대로 넘어지기 쉽다. 비가 온 뒤 고인 작은 물웅덩이조차 아이에겐 돌아가야 할 장애물이 된다. 보도는 어느 순간 끊기고, 아이는 차도로 내려선다. 자동차의 바퀴와 범퍼가 눈앞에 다가온다. 차량 보닛 위에 설치한 장식물은 아이 눈높이에서 흉기가 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손에 닿지 않고, 버스의 발판은 너무 높이 있다. 관공서의 문은 무거워 스스로 밀고 들어가기 어렵다. 아이는 매 순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도시의 일상은 이처럼 아이에게 늘 버겁고 과하다. 어른에게는 사소한 불편이 아이에게는 긴장이고 장벽이며 때로는 치명적 위험이 된다.
‘어반 95 운동’이 던진 메시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기까지 나라별로 시차가 있었다. 1990년대 말 독일과 네덜란드에 출장을 갔을 때 그 차이를 실감했던 기억이 있다. 도시 어디에서나 유아차를 미는 부모들을 볼 수 있었다. 관광지는 물론 시내의 광장이나 공원 등 어디에서나 유아차가 오갔다. 지하철과 트램 같은 대중교통까지 유아차와 휠체어가 자연스럽게 타고 내리는 장면을 보며 많이 놀랐고 무척 부러웠다. 경사진 공원에 수십 개의 계단이 있는데도 계단을 비스듬히 오르는 경사로가 있어서 유아차도 장애 없이 오갈 수 있었다.
그 무렵 우리 도시는 그러지 못했다. 유아차는 주택가 또는 아파트단지 안에서나 볼 수 있었고, 버스나 지하철에 싣고 멀리 나들이하는 것은 고된 여정이었다. 도시를 누구의 기준으로 설계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바꿔야 한다는 각성에서 새로운 운동이 시작됐다. 네덜란드의 한 민간재단이 2016년 시작한 ‘어반 95(Urban 95) 운동’이다. 이 재단은 어린이의 삶이 대부분 도시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동차와 효율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가 아이의 안전과 발달에 불리하다는 걸 직시하고, 세 살 아이 평균 키 95cm에서 도시를 다시 보자고 제안했다.
‘어반 95’는 대규모 정비사업이 아니라 일상을 바꾸는 작은 인식의 전환을 지향한다. 아이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 유아차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보도, 매일의 삶에서 놀이와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추구한다. 가장 작은 시민을 기준으로 설계할 때 도시는 모두에게 더 좋은 공간이 된다.
이러한 시선의 전환은 어린이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그리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강을 직선화하고 콘크리트로 둘러싸면 물의 흐름은 빨라질지 몰라도 강에 깃들어 살아가던 생명은 사라진다. 밤을 밝히는 강한 조명은 인간에게는 편리하지만 빛에 이끌린 작은 곤충에게는 생을 마감하는 불꽃이 된다. 벌과 나비와 새들이 사라진 도시는 결국 인간의 삶도 위협한다.
도시 품격은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나
우리는 그동안 한쪽의 시선으로 도시를 만들어 왔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더 크게, 더 빠르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설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도시는 더 높아지기 전에 더 낮아져야 한다. 더 많이 담기 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삶을 먼저 살펴야 한다.
95cm에서 본 도시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살아온 기준을 되묻게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안전한 도시는 노인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안전한 도시다. 좋은 도시는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작은 존재의 눈높이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품격은 가장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난다. 그 낮은 곳을 바꾸는 것은 결국 시민이다. 시민의 품격이 곧 도시의 품격이다.
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