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유산위원회에 ‘한글 전문가’ 반드시 참여해야
2024년 5월, ‘문화재’라는 일본식 명칭을 벗고 ‘국가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유산청이 출범했다. 이는 단순한 보존과 관리의 차원을 넘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온전히 계승하고 미래로 발전시키겠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정작 우리 문화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자 정체성의 근간인 ‘한글’은 국가유산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전히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겨레의 큰 스승이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은 1446년 반포된 이래 약 58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숨결을 담아온 문자이다. 한글은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이며, 우리나라를 넘어 인류가 함께 공유할 만한 위대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500여년 동안 공식 문자였던 한자에 가려 ‘서민의 글’로 머물렀지만, 그 속에서도 한글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한글로 기록된 수많은 서적과 편지, 내방가사, 금석문 등이 남겨졌고, 이는 오늘날 대체할 수 없는 국가유산이 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한글은 민족의 정체성이자 독립정신의 상징이었고, 서슬퍼런 탄압 속에서도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유산이기도 하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우리 민족과 함께 6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한글 관련 전문 분야 없는 문화유산위원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국가유산 관련 최고 심의·의결 기구인 ‘문화유산위원회(현재 명칭)’의 전문 분야에 한글학 국어학 문자학 한글서예 등 한글과 관련된 분야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분야 자체가 없으니 한글 전문가가 위원으로 참여할 길도 애초에 차단되어 있었던 셈이다. 60여년 동안 사용하던 ‘문화재’라는 명칭은 바꾸었지만, 정작 제도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논하는 문화유산위원회에, 한국 문화의 핵심인 한글 분야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제도적 모순에 가깝다.
이는 어쩌면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한글문화에 대해 문화유산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글 전문가들도 국가유산을 논의하는 자리에 함께 참여하여 보다 균형 잡힌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국가유산청은 기존 문화유산위원회 등을 폐지하고 국가유산위원회를 새로 설치하는 내용을 입법 예고하였다. 특히 '국가유산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분과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을 개정하는 방안이 주요 내용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번의 제도 개편은 그동안의 불균형적인 시각을 바로잡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을 수 있도록 국가유산 정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자는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니다.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담아내는 가장 강력한 문화유산이다. 한글은 우리 문화의 핵심이자 자존심이며, 세계에 당당히 내보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국가유산기본법 역시 문화유산의 ‘계승과 발전’을 중요한 가치로 명시하고 있다.
문화유산 계승의 첫걸음 될 것
이제는 과거의 틀에 갇힌 보존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국민이 누리고 미래 세대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유산위원회에 한글과 훈민정음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유산청이 지향하는 ‘문화유산의 온전한 계승과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글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