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대만해협이 마주한 새로운 리스크
호르무즈 해협 상황은 갈수록 태산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지역의 해상 통과가 안정된다고 해도 그 형태가 어떨 것이며, 시기가 언제일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비슷한 사태가 중국과 대만 사이 대만해협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이 바다에 대한 주권을 내세우면서 봉쇄를 행한다면.
호르무즈 해협이 전세계 석유 물류의 20%를 품고 있다면 대만해협은 전체 반도체 물류의 60%를 품고 있다. 그나마 주요 산업국들은 석유의 최소 비축분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반도체는 그런 것도 아니다. 반도체 물량이 떨어졌을 때 지구적 가치사슬에 미치는 충격은 훨씬 크다. 다만 대만해협은 그 지리적 위치와 반도체의 중요성으로 인해 너무나 민감해서 중국이라고 해도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만약 중국이 대만해협 봉쇄한다면 반도체 물류 60%가 멈춰
그런데 호르무즈 해협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2월 27일 이전까지는 이 해협의 중요성을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오히려 그 민감성 때문에 누구도 봉쇄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제 그 ‘꼬리리스크’가 현실이 된 지금 대만해협의 리스크도 다르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달 출간된 스탠포드 후버 연구소 아이크 프레이만의 '대만 지키기(Defending Taiwan)'는 흥미롭다. 프레이만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경험은 중국에게 대만 해협과 관련해 손쉬운 꽃놀이패를 하나 안겨 주었다고 한다.
이번 봉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재)보험사 동향이다. 중동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보험사들은 선박들의 보험 인수를 거부하는 일이 속출했다. 전세계 원양선박 톤수의 90%를 커버하는 국제 P&I 클럽 12개 전원이 72시간 내 전쟁위험 담보 취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결국 해상물류를 보다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열쇠는 보험사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표준 해상 전쟁위험보험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관련된 분쟁으로 인한 손실보상은 자동으로 무효화시키는 '5대 강국 조항'이라는 것이 있다. 이 나라들이 당사자로 나선 해상분쟁 지역에서는 보험이 사라질 것이며 따라서 해상운송 또한 멈추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대만해협을 생각해 보자. 미국 일본 호주 등과 중국의 해군력이 서로 대치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필요도 없다. 중국은 그렇게까지 일을 크게 키울 것이 없다. 이곳에 대해 일방적으로 배타적인 수역임을 선언하고 해경을 출동시켜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대해 해상검문을 강화하며 괴롭힌다거나, 드론을 몇 개 띄우는 정도로만으로도 해상보험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고 이에 따라 해상운송도 끊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호르무즈에서 이란은 물리적 봉쇄뿐만 아니라 보험시장을 통한 봉쇄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몇 차례의 공격만으로 민간 보험시장 전체가 철수했고, 그것만으로 상업운항이 스스로 멈추었다. 중국은 이란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하게 같은 메커니즘을 쓸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차단되는 것은 원유가 아니라 전세계 첨단 반도체 공급망이라는 것이다.
호르무즈 사태, 국제법의 '자유 항행' 원칙 흔드는 중대한 변곡점
물론 ‘가능성’일 뿐이다. 하지만 중동전쟁 이후 전세계 바다의 ‘초크포인트’들은 급격하게 지정학적 민감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20일 일본이 중국의 동중국해 신규 구조물 건설에 공식 항의했다. 일본 구축함 이카즈치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대만해협을 통과했고, 중국은 일본에게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진지하게 반성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어쩌면 호르무즈 사태는 지난 200년간 거의 자연법처럼 굳어져 있었던 국제법의 '자유항행(mare liberum) 원칙'이 흔들리는 중대한 변곡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