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중동전쟁, 한국경제 ‘L자형 침체·V자형 반등’ 갈림길

2026-04-22 13:00:01 게재

KDI 중동전쟁 대응 TF, 시나리오별 경제 파급 효과 분석

호르무즈 봉쇄 길어지면 올해 성장률 1%대 초반까지 추락

물가 상승률 4.2% 폭등 가능성 … ‘복합위기’ 현실화 경고

“추경 신속집행·유류세 탄력대응·공급망 다변화가 방어선”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렬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위기가 한국 경제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중동전쟁 대응 TF’는 22일 발표한 긴급 현안자료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우리 경제가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 방향에 따라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가느냐, 아니면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늪에 빠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해상운임 급등과 물류 적체라는 이중고를 겪는 자동차 수출업계를 위해 현장 밀착 지원에 나섰다. 사진은 22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3대 시나리오 = KDI는 전쟁의 전개 양상과 유가 변동폭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시나리오는 전쟁이 국지전 수준에서 진정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단기에 해제되는 경우다. 이 경우 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안팎에서 안정된다. 올해 우리 경제도 기존 전망치인 1.9%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해협봉쇄가 수주 이상 지속되며 유가가 100~110달러 선을 유지하더라도 한국 경제는 몸살을 앓게 된다. KDI는 이 경우 성장률이 1.5%까지 하락하고 물가는 3.8%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봉쇄가 6개월 이상 장기화되고 유가가 150달러를 돌파하는 ‘제3차 오일쇼크’ 수준의 위기다. 이 시나리오에서 우리 경제 성장률은 1.2%까지 추락하며 사실상 제로 성장에 가까운 침체를 겪게 된다. 물가는 4.2%를 상회하며 민생 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동전쟁, 6개월 이상 장기화하면 = 중동전쟁이 장기전으로 가면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중화학 공업과 운송업이 가장 먼저 ‘비상등’을 켜게 될 전망이다. 석유화학과 정유산업의 핵심원료인 나프타 가격 폭등으로 생산단가 상승률이 최대 15~20%에 달해 손익분기점을 하회하는 ‘가동 중단’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KDI는 판단했다. 항공·운송산업은 배럴당 유가가 10달러 상승할 때마다 수천억원의 이익이 증발한다. 이는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져 수출 경쟁력을 낮춘다. 자동차와 조선산업도 원자재와 물류비 상승으로 제조원가가 5~8%가량 높아진다. 여기에 소비자의 구매력 하락과 맞물려 실적악화를 가중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효자산업인 반도체 역시 공정특성상 전기요금 인상압박이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며, 항공 물류 차질에 따른 납기 지연 리스크가 글로벌 신뢰도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경기침체는 즉각적인 고용한파로 이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KDI는 성장률이 1.2%까지 추락할 경우 고용 지표가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경고했다. 신규 취업자 증가 폭은 기존 전망치 대비 연간 10만~15만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제조·서비스업의 경영악화로 실업률은 기존 전망보다 0.5~0.8%p 추가 상승하며, 특히 청년층과 임시직의 고용 불안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물가상승률이 4.2%에 육박하면서 명목임금 상승분을 잠식, 실질임금은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가계 생계비 부담을 키운다,

◆에너지·물가·환율의 ‘트리플 악재’ = KDI는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에너지 수입 구조를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했다.

먼저 에너지 안보에 취약한 경제구조는 산업계 전반의 생산단가를 상승시킨다. 한국의 중동원유 수입비중은 69.1%에 달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수급 차질이 불가피하다. 유가 상승은 기업의 생산단가를 높여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는 다시 국내물가 상승으로 전이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금융시장도 크게 흔들린다. 중동전쟁이란 지정학적 리스크는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를 부추긴다. 실제 중동전쟁 이후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수입물가를 추가로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가중시킨다.

물가 폭등은 결국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떨어뜨려 내수 소비를 급격히 위축시킨다. KDI는 물가가 1%p 상승할 때마다 가계 소비 지출은 약 0.4~0.6%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망 회복력 확보가 핵심” = KDI는 이번 위기를 전형적인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정교한 대응을 주문했다.

우선 에너지 다소비 중소기업과 영세 운송업자를 대상으로 한시적 세액 공제와 전기요금 분납 제도를 도입해 도산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인위적 구조조정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의 지급 요건을 완화하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에 저금리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신속히 수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KDI는 정부가 취해야 할 4대 긴급 정책대응 방향도 제시했다.

우선 ‘재정의 적기 역할 수행’을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26조2000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현장의 민생 고통이 심한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중심으로 조속히 집행할 것을 제안했다. 단순히 예산을 쓰는 것을 넘어, 물가 상승분을 보전해 줄 수 있는 ‘타깃형 지원’이 필수적이다.

에너지 가격 안정화 기제가 제때 가동돼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석유류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조치를 유가 추이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가가 120달러를 상회할 경우 추가적인 에너지 바우처 지원 등 과감한 시장개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를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특정지역에 편중된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선을 미주, 동남아 등으로 다변화하는 중장기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부품과 자원에 대한 국산화 투자를 확대해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회복력’도 키워야 한다.

아울러 미국 등 주요국과 외환 공조를 강화해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고, 금융시장의 패닉 심리가 실물 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할 것도 주문했다.

조동철 KDI 원장은 “현재 우리 경제는 대외환경 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라며 “정부는 낙관적인 기대를 버리고 최악의 시나리오인 ‘심각형’ 상황에 대비한 조치를 즉각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성홍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