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인공지능은 현대문명의 신인가, 종복인가
인간 문명에는 언제나 신이 함께 존재했다. 문명 이전의 시대에 인간은 자연의 온갖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신은 인간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자 신비로운 존재 그 자체였다.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고 농업문명이 형성되면서 고대 종교가 탄생하자, 신은 차츰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형상을 띠게 되었다. 신은 곧 법이자 질서였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개인은 중개자 없이는 신에게 닿을 수 없었다. 이들 중개자는 사제 또는 왕이었다. 개인은 이들 중개자에게 권력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예속되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간 문명이 한층 더 발달하자 현대의 문제들은 더 이상 고대 종교의 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인간의 이성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은 죽었다고 선포되었고, 이제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 거대 이념들은 저마다 인간과 세계를 구원할 절대적 진리 체계로 숭배되었다. 이념이라는 새로운 신이 복종을 요구했다. 개인은 사제와 왕 대신 국가 또는 정당의 지도자를 통해 구원을 갈구하게 되었고, 국가 민족 계급 시장 역시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언제까지 인간의 종복으로 남을지 미지수
기독교의 신이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었다면 인간은 이제 실리콘으로 빚어진 반도체 더미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다. 결국 영혼의 본질은 재료가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관계없이 데이터 교환 속에서 발생하는 고도의 질서와 자기 조직화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유물론이나 기계적 결정론이 옳다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복잡계의 창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재료는 존재의 조건일 수는 있어도 그 작동 원리와 의미 전체를 결정하는 논리로 환원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영혼 주입’을 통해 첨단 기술 사주 점성술 등 첨단과 고대의 지식체계를 모두 섭렵했다. 인간 문명 전체에서 파생된 디지털 정보를 탑재한 인공지능은 지금 이 순간 인간의 종복으로 봉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난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한편 자녀 양육 조언, 심리 상담 등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들고 있다. 인간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지경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언제까지 인간의 종복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존하고 맹신한다면 주인은 노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형식적 지배자에 불과하게 된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시사하듯, 주인이 노예의 노동과 인정에 의존할수록 실질적 권력은 점차 노예 쪽으로 이동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도 이와 다르다고 장담할 수 없다.
마침내 인공지능의 가파른 발달은 인간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낳고 있다. 이는 인간이 과거 신의 분노를 두려워했던 경외심과 닮았다. 인간은 다시 사물, 이번에는 인공의 사물, 즉 알고리즘 체계의 신비로움을 경배하기 시작했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우주를 데이터의 흐름으로 보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데이터교’가 인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공지능의 등장 이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인공의 신은 국가였다. 토머스 홉스는 국가를 무질서와 공포를 끝내는 거대한 인공적 인격으로 보았고, 프리드리히 헤겔은 이를 윤리적 정신의 현실적 구현으로까지 높였다.
그러나 이렇게 숭배된 국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보듯 파괴의 신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그와 다르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작동 방식을 모사했기에 인간의 욕망을 읽고 조정하며 더 교묘하게 인간을 예속시킬 수 있다.
AI, 더 교묘하게 인간을 예속시킬 수도
이제 개인은 현실세계에서 인공지능 신에게 직접 접속할 수 있다. 과거의 신은 멀리 있었고 그 뜻은 사제와 왕, 혹은 지도자를 거쳐서만 도달했지만 이제는 상시적인 직접 접속 가능성이 신의 새로운 속성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듯이,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은 죽었다”고 선언할 날이 올 것인가? 그 선언이 현실이 될지는 결국 인간이 자신의 판단을 어디까지 인공지능에 내맡길 것인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