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도시계획, 공간설계 넘어 시간경영으로
도시는 흔히 공간으로 설명된다. 면적 용적률 높이 밀도 등. 행정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현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다른 결론에 닿는다. 공간만이 아닌 시간이 함께 결합되어 도시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같은 사업이라도 언제 시작하느냐, 얼마나 지속되느냐,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정책의 성패도 마찬가지다. 시간 설계가 빠진 정책은 대개 중간에 흔들리거나 다른 길로 새기 십상이다.
시간은 도시경영의 핵심 변수, 우리 행정 현실은 여전히 공간에 갇혀
정비사업이 대표적이다. 재건축·재개발은 속도가 곧 비용이다. 사업 기간이 1~2년만 늘어나도 금융비용과 공사비가 급증한다. 현장에서는 “1년 지연 시 수백억원이 추가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한다. 반대로 인허가 단축과 절차 개선으로 기간을 줄이면 그 자체로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시간은 가장 직접적인 비용 변수다.
관광 정책에서도 시간은 핵심이다. 방문객 수보다 ‘체류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1박을 더 하는 관광객은 단순 방문객보다 훨씬 큰 돈을 쓰고 간다. 관광 측면에서 도시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에 달려 있다.
이처럼 시간은 도시경영의 핵심 변수지만 우리 행정의 현실은 여전히 공간에 머물러 있다. 도시계획은 공간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돌아가지만 시간 설계는 빈약하다. 특히 단체장 임기와 정책의 시간이 충돌한다. 도시의 시간은 10년, 20년 단위로 흐르지만 행정은 4년 단위로 끊긴다.
시간경영에 성공한 해외 사례들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는 1990년대 후반 마스터플랜이 수립된 뒤 2000년대 초반 공사가 시작된 유럽 최대 도심 재생 프로젝트다. 전체 사업 기간만 약 30년에 달한다. 그 사이 함부르크 시장이 5번 바뀌었고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계획 수정도 반복됐다. 그럼에도 ‘항만 재생과 수변도시 조성’이라는 프로젝트의 핵심 기조는 변함없이 유지됐다.
핵심 시설인 엘프필하모니는 공사 지연과 예산 증가로 논란을 겪었다. 초기 약 7700만유로로 시작된 사업비는 최종적으로 8억6000만유로 수준까지 늘었다. 완공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단기적으로 보면 실패에 가까운 사업이었다. 그러나 완공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연간 400만명 이상이 찾는 랜드마크가 됐고, 도시 브랜드 자체를 끌어올렸다. 단절 없는 시간의 축적이 가치를 만든 사례다.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 재개발도 비슷하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이 사업은 약 20년에 걸쳐 진행됐다. 총 27헥타르 부지에 주거 업무 문화시설이 들어섰고,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입주했다. 사업 초기 여러 차례 계획 변경과 경기침체를 겪었지만 ‘런던을 대표할 복합 도시공간 건설’이라는 방향은 유지됐다. 현재는 런던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재생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역시 1960년대부터 60년 가까이 이어진 프로젝트다. 정권과 시장이 수차례 바뀌었지만 장기계획은 유지됐다. 그 결과 유럽 최대 규모의 업무지구로 자리 잡았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시간의 연속성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계획은 수정됐지만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간은 그대로지만 단절을 극복하고 시간경영에 성공한 셈이다.
반면 우리는 다르다. 정권과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계획이 재조정된다. 속도는 강조되지만 지속성은 약하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시간의 행정’이다. 공간 일변도 계획에 시간 축을 결합하는 접근이다. 정책을 기획할 때부터 유지기간 확장시점 종료이후까지 포함한 전주기 설계가 필요하다. 단기성과가 아니라 시간에 따른 누적효과를 평가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도시계획도 이제 공간설계 넘어 시간 경영으로 나아가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체라고 설명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공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간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전체가 보인다. 시간을 줄이면 비용이 줄고, 시간을 쌓으면 가치가 커진다. 그러나 아무 시간이나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방향 없는 시간은 낭비다. 설계된 시간만이 자산이 된다. 도시는 시간 위에 쌓인다. 도시계획도 이제 공간설계를 넘어 시간경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제형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