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동전쟁 장기화와 밀려드는 물가폭등

2026-04-23 13:00:01 게재

미국과 이란 간 휴전이 무기한 연장되자 중동전쟁의 장기화가 굳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질서가 규칙 기반에서 힘과 이익 기반으로 빠르게 이동, 동맹보다는 각자도생이 확연해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물가가 급등, 특히 서민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작년 7월 이후 9개월째 오름세를 보여온 수입물가는 중동전쟁으로 폭등한 국제유가와 대미달러 환율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3월에 이례적으로 16.1%나 급등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월 이후 28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수입물가는 약 1~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내달에는 물가부담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실질 소비 여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금리인상과 세금부담 확대, 주거비 상승마저 우려되고 있어 서민들의 먹고살기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중동전쟁 장기화 우려 속 서민들의 삶의 질 급격히 떨어져

전체 소비 지출에서 식비(식료품 구입비+외식비)이 차지하는 비중인 엥겔계수는 지난해 개발도상국 수준인 30%대로 다시 높아졌다. 이에 따라 무전취식과 무임승차, 교량 동판 절도사건 등 후진국형 생계형 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

또한 국제선 항공권에 부과하는 항공사의 유류할증료가 최고 단계로 치솟았고 해운사들도 저유황유 할증료를 대거 인상하기 시작했는가 하면 긴급 유류할증료를 도입하고 나섰다. 게다가 비료의 주원료인 요소 가격도 3월에 전월 대비 1.5배로 폭등, 비료 공급 부족으로 인해 올해 하반기부터 세계 곡물 수확량이 크게 줄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특히 국내 소비자 식탁을 점령한 수입 생선과 육류, 과일 등 일부 수입농축수산물값이 국내산과 비슷한 수준까지 폭등, 국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에게 단돈 1000원에 제공되는 아침밥이 조기 매진돼 수업시간보다 2~3시간 일찍 등교해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배식구로 달려가는 이른바 '학식 오픈런'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값싸고 맛있는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거지앱까지 등장,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 위기는 잠깐 내리고 그치는 소나기가 아니라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거대한 폭풍우다. 정부가 비상수단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할당관세 인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쿠웨이트의 원유 수출 불가항력 선언 등으로 수입 먹거리 상승 압력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설사 중동전쟁이 끝나더라도 시설복구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돼 경기부진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카드론, 자동차 담보대출 등 불황형 대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도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은 필연적으로 유가급등 현상을 초래, 거의 예외 없이 세계 경기 하락으로 연결됐다. 국제유가 급등은 실질 구매력이나 투자여력을 약화시켰고 세계 각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를 이겨내 반드시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협상 난항은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비롯해 수출과 한미 동맹의 유연성에 복합적인 과제를 던져주었다.

특히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발발 3주 만에 국제유가가 55%나 폭등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와 비교할 때 한국의 수입 에너지 중동의존도는 90%에서 70%로 낮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높은 만큼 원유와 가스 도입선을 적극적으로 다변화해야 하고 전략 비축유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물론 자원 확보에도 매진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 비롯 수출 한미동맹 유연성 등 복합 과제 풀어야

대내적으로는 정부가 ‘국가 대전환’ 과제로 제시한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 구조개혁을 미뤄서는 안된다. 아무리 위기상황이라도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각종 규제를 혁파하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또한 시류에 맞게 인공지능(AI)과 로봇 도입을 가로막는 제도적 수술도 시급하다.

특히 이번 전쟁은 동맹의 자립, 에너지 재편,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라는 세 방향에서 새로운 도전장을 제시했다. 미국의 시선이 중동에 쏠린 사이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한미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스스로 지킬 힘을 키우고 외교를 통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 사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신속하고 다층적이며 복합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본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