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6-04-23 13:00:01 게재

‘길들여지지 않는 근대성’과 이주

사람들은 왜 고향을 떠나는가. 학자들은 오랫동안 두 가지 답을 제시해왔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질 때 사람들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누가 정의하는가? 지금까지 이주 연구는 좋은 직장, 개인의 자유, 민주적 사회를 이주의 목표로 당연하게 전제해왔다. 한마디로 서구식 근대적 삶이 이주의 종착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근대성은 사실 식민주의와 함께 세계에 퍼져나갔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이식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앙골라에 간 포르투갈인은 자동으로 ‘전문 인력’이 되고, 포르투갈에 온 앙골라인은 으레 ‘저숙련 이민자’로 분류된다. 출신이 다를 뿐인데 대우가 다른 이 현실은 식민지 시대의 위계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주 연구에서 서구식 근대성의 틀을 아예 걷어내야 할까. 일부 학자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중동으로 떠나는 남아시아 청년도, 유럽 무대를 꿈꾸는 아프리카 운동선수도, 어떤 형태로든 근대적 열망 안에 있다. 이론가들이 근대성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주민들의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근대성 실현하는 방식은 개개인 따라 달라

최근 이주 연구에서 주목받는 ‘길들여지지 않는 근대성 (Unruly Modernity)’ 개념은 이 막힌 지점을 뚫으려는 시도다. 핵심은 간단하다. 근대성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나이지리아 출신 운동선수들을 보자. 그들은 더 나은 선수 생활을 위해 훈련에 매진하지만, 동시에 기도를 통해 꿈을 다잡고 버텨낸다. 성공을 향한 열망은 서구식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은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 안에 있다.

유럽에서 IT 대신 요가 강사의 길을 택한 인도 여성 이주자도 마찬가지다. 능력 있는 엔지니어였지만 이주 후 노동시장의 벽에 부딪혔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일궈냈다. 이들은 서구식 근대를 그대로 따르는 것도, 완전히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문화와 경험을 바탕으로 근대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길들여지지 않고, 예상을 벗어나며,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근대성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주민, 동화의 대상 넘어서야 이해 가능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방식에 맞춰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들이 품은 꿈과 삶의 방식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다채롭다. 그들은 저마다의 근대성을 이 사회로 가져오고, 한국의 문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변용해 나갈 것이다.

이주민을 단순한 동화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이주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파바티 라구람 영국 오픈 대학교 지리학·이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