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전면 개정할 때다
요즘 ‘맞불집회’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표현을 압도하거나 봉쇄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면서 헌법이 보장한 자유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흔들리고 있다. 집회·시위현장이 ‘주장의 경쟁’이 아니라 ‘소음의 전쟁’으로 변한 지도 오래다. 집회는 열렸지만 상대 집회의 확성기 음향에 완전히 묻혀 발언이 들리지 않거나, 상대 집회가 주요 출입구를 막아서 참가자나 메시지가 위축되거나 사실상 고립되기도 한다. 특히 장소 선점이나 반복 신고로 애초에 말이 설 자리를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부딪히는 맞불집회는 이미 대립과 충돌의 서사를 내포하고 있어 표현의 내용보다는 사회적 갈등의 한 장면으로 소비되고 만다. 갈등만 부각된 채 정작 중요한 ‘실질적 표현의 자유’와 ‘목소리’는 외면되는 것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1963년 시행 이래 개정을 거듭했고, 1989년 개정에서는 질서유지인 제도 도입, 금지통고에 대한 이의신청제도 마련,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 장소 조정 등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는 전부 개정에 해당하는 혁신적 변화로 6월 민주항쟁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알려주면 국가는 관리만 한다’는 식의 한발 물러선 질서유지자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음전쟁으로 변한 집회 현장
산업화와 권위주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로 나아가던 과정에서 집회와 시위는 일그러진 국가권력에 맞서는 시민의 핵심적 기본권이었다. 당시 경찰은 권위주의 국가의 대표적 공권력으로 인식되었고,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컸다. 법은 경찰에게 일정한 재량을 부여하기보다 오히려 그 개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집회현장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경찰의 적극적 역할은 여전히 멀었다.
요즘 표현의 방식은 훨씬 다양해졌고,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맞불집회 반복신고 소음경쟁과 같은 새로운 양상은 과거의 법적 틀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경찰의 갈등 중재 역량을 신뢰하지 않는 인식은 여전히 견고하다. 집시법 역시 경찰의 역할을 과거에 묶어 두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대항 표현을 허용한다. 그러나 상대의 표현을 침묵시키는 행위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물리적 봉쇄로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과도한 소음으로 청취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방해를 목적으로 장소를 장기 독점하는 행위는 자유의 탈을 쓴 권리남용이다. 이제 국가가 더 이상 ‘중립적 방관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집회의 실질을 보호해야 할 헌법적 당위를 직시해야 한다.
경찰은 대한민국이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증명하는 존재다. 이제 집시법에서 경찰의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 경찰은 단순한 공공질서의 유지자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현장에서 구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권리가 충돌하는 공간에서 균형을 잡는 존재, 곧 ‘거리의 판사’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맞불집회와 같은 경합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공존시키는 문제는 결국 현장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경찰의 전문성을 전제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집시법은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선신고 절대주의를 완화하고, 완충구역 설정 및 복수 주체의 중첩소음을 규제하는 기준 또한 마련돼야 한다. 이제는 경찰이 적극적 중재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과 절차적 통제를 함께 설계할 때다.
사회적 갈등이 밀물처럼 불어나는 집회 현장을 지키는 경찰이 최소한의 보호장비에 의존한 채 목숨을 건 사투를 하도록 방관하는 것은 국가적 폭력에 가깝다. 이제는 경찰이 질서를 유지·관리하는 단계를 넘어 서로 다른 표현이 공존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과 그에 걸맞은 법적 위상을 줄 때가 되었다.
경찰의 중재 역할 재정립되어야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사는 나라에서 ‘서로의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을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가’는 침묵해온 다수 국민의 요구다. 이제 집회·시위의 자유는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절대반지’일 수 없다.
현재의 집회·시위 관리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찰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용기 있는 입법이다. ‘집회법’은 지금, 전면 개정될 때가 되었다.
대전대 교수
서울경찰청 인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