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이나경 한양대(ERICA) LIONS자율전공학부
생명과학 지망생의 이유 있는 변심
고교에 입학한 뒤 줄곧 생명과학 관련 학과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특히 생명과학에 흥미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교 3년 동안 수학·과학 중심의 공부를 이어가면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맞는지 의문이 생겼다. 특히 과학 수업과 동아리 활동에서 겪은 실험 과정의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실패와 기다림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지 두려워졌다. 고민은 자율전공학부 진학으로 이어졌다. 한양대(ERICA) LIONS자율전공학부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 이나경씨를 만났다.
이나경
<물리학Ⅰ·Ⅱ>까지 이수하며 생명과학 진로 기초 쌓아
나경씨는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명확하게 답이 나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대학 전공도 자연 계열을 염두에 뒀다. 그러던 중 치매를 앓던 할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기억과 호르몬 반응 등 인간의 질병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생명과학 분야로 진로를 구체화하게 됐다. 교과와 동아리 활동은 자연스럽게 수학과 과학 중심이 됐다. 선택 과목의 경우 수학은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심화수학Ⅰ·Ⅱ>를, 과학은 <물리학Ⅰ·Ⅱ> <생명과학Ⅰ·Ⅱ> <화학Ⅰ·Ⅱ>를 이수했다. 어렵더라도 흥미가 있고 필요한 과목을 우선 선택했다. 덕분에 수학·과학 성적은 평균 내신 등급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생명과학 동아리에선 실험과 탐구를 하면서 관심을 더 넓혀갔다. 책이나 인터넷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일이 기억에 남는다. <화학Ⅰ>에서 탄소 화합물을 학습하며 아스피린 합성을 배우던 중에는 ‘역합성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설계했다. 아스피린 합성 반응을 역으로 진행하면서 아세틸 살리실산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살리실산을 추출해 염화제이철 용액을 떨어뜨려 보라색이 나타나는지 관찰해야 했는데 추출된 살리실산의 양이 적어 여러 보완 실험을 거쳤죠. 그 밖에도 약물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정상 세포와 암 세포의 차이, 암의 발생 원인, 프리온 단백질의 특징과 관련 질병 등 다양한 주제로 심화 탐구를 이어나갔어요.”
인공조명과 모바일 기기의 지속적인 빛이 인간의 생체 주기와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면서 초파리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먼저 종이박스 여러 개를 붙여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한 뒤 LED 조명과 전원공급장치(SMPS)를 연결했다. 아크릴 박스에 초파리를 넣고 다양한 색깔의 LED 조명을 비추면서 광원에 따른 영향을 관찰했다. 보름 정도 매일 아침과 점심에 초파리의 상태를 살폈다. 실험 도중 초파리의 번식으로 개체 수가 증가했으며, 특히 초록색 빛을 비춘 환경에서 번식이 활발하게 나타났다. 또한 지속적으로 빛에 노출된 초파리의 외형 변화 여부도 함께 확인했다.
“현미경으로 표본을 관찰했는데, 더듬이가 있어야 할 머리 부분에 다리가 생기는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났어요. 새로 태어난 초파리는 다른 개체보다 몸집이 작고 색이 더 연하고 투명했고요. 개체 수를 세고 움직임이나 생존율도 함께 분석해보니, 조명 색이 번식이나 돌연변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제 손으로 결과를 확인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죠.”
과학+시사+AI로 탐구 영역 확장·심화
나경씨는 틈틈이 최신 과학 동향과 정치·시사 뉴스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 학교 공부를 넘어 세상에 대한 관심을 넓혀나갔다. 이러한 활동은 수행평가나 자율 탐구 주제를 정하는 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특히 단백질 생성 인공지능 ‘알파폴드’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관심 있던 생명과학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알파폴드는 단백질 염기서열만으로 구조를 몇 분 만에 예측할 수 있는 AI 모델로, 나경씨는 구글 코랩을 통해 이를 직접 활용했다.
“단백질 염기서열은 유전자를 구성하는 핵산과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를 의미하는데, 생물의 특성을 결정해줘 화학·제약·바이오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암 발생 억제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검색해 구글 코랩 사이트에 입력했더니 순식간에 단백질 구조를 보여주더라고요. 흥미로웠죠.”
모교인 충남 복자여고는 AI·SW 교육 선도학교라 다양한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경씨도 AI나 SW에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했고, 이를 여러 교과에 활용했다.
<수학Ⅰ>에서 로그함수를 배우면서 ‘지오지브라’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실제 그래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처음엔 급격하게 변했다가 점점 완만해지는 로그함수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물리학Ⅰ>에서는 물체의 질량과 크기가 공기저항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표면적은 같지만 질량이 다른 공을 모델링한 뒤, 3D 프린터로 출력해 각각의 공을 자유낙하시켜 공기 저항력을 비교했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은 실험이나 그래프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교과 역량과 디지털 역량을 함께 높일 수 있었다.
생명과학에서 자율전공으로 폭넓은 탐색 기대
생명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패를 반복하며 기약 없는 도전을 해야 하는 연구를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생명과학 이외의 진로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막막하던 차 진로를 탐색한 후 전공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전공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데 자율전공 모집 단위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학이 자율전공은 계열 적합성이나 진로 역량보다는 학업 역량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시 6장 중 한양대(ERICA)만 종합전형 면접형으로, 나머지는 교과전형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가장 희망했던 한양대(ERICA)에 합격했다.
2학년 때 전공으로 선택하려면 선수 과목 이수가 필요한 학과들이 있지만, 조선업, 반도체, 컴퓨터공학은 물론 법과 정치 분야까지 가능한 한 여러 분야를 경험하는 데 초점을 둘 생각이다.
“지망 계열을 빨리 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3이 되니 생명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게 아쉽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후배들은 ‘빨리 결정해야 한다’라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조금 여유 있게 선택하면 좋겠어요. 또 중간에 진로를 바꿨다고 너무 불안해하진 않길 바라요. 종합전형은 진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고, 선택한 과목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충분히 좋게 평가해주는 것 같아요.”
취재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사진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