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세계 짓누르는 ‘트럼프 후 스트레스 장애’

2026-04-24 13:00:02 게재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 직전까지 내몰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대낮에도 폭음을 하는 등 심각한 알코올 의존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닉슨은 연방 의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전화기만 들면 20분 안에 7000만명을 죽일 수 있다”는 섬뜩한 농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군 통수권자가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었다고 판단한 제임스 슐레진저 당시 국방장관은 합참의장과 군 수뇌부를 비밀리에 소집해 비공식적 지침(Schlesinger Instruction)을 하달한다. “대통령으로부터 핵 공격이나 비정상적인 군사행동 명령이 내려올 경우 나(슐레진저)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확인을 거치기 전에는 집행하지 마라.”

키신저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은 슐레진저와 긴밀히 협력하며 닉슨의 돌발발언이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필터링했다.

트럼프 언행에 대한 ‘필터링’ 부재가 만든 불안

이란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증세는 날로 도를 더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의 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한 가십을 넘어 수정헌법 제25조(대통령 직무 수행 불능 및 승계)까지 소환될 만큼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최근 몇주 간 그가 보여준 언행은 지지자들조차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몰상식적이다. 한때 트럼프의 강력한 우군이었던 마조리 테일러 그린 전 하원의원은 “대통령이 미쳐가고 있다(has gone insane)”며 공개적으로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극우 음모론자인 알렉스 존스조차 트럼프를 “미친 슈퍼 빌런 같다”고 평할 정도다.

트럼프의 인터뷰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물을 보면 이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는 부활절 메시지에 비속어를 섞거나, 자신을 예수로 묘사된 인공지능(AI) 이미지를 올리는 등 현실 원칙이 무너진 ‘병적 나르시시스트’의 단면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이란과의 종전협상에 대해서도 “모든 발전소와 교량을 폭파하겠다”고 극도로 위협적인 시한을 정해놓고는, 시한이 닥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휴전을 연장한다”며 물러나는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를 ‘의도된 혼란’으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충동적인 감정조절의 실패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전문가들은 치매 초기 증상이거나 심각한 인지적 퇴행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제이미 래스킨 민주당 의원 등은 대통령 주치의에게 공식적인 인지검사 결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 트럼프 주변에 1974년의 슐레진저나 키신저와 같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충성심이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심보다 앞서는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1기 때만 해도 그나마 제임스 매티스(국방), 존 켈리(비서실장) 등 이른바 ‘어른들의 축(Adults in the room)’라고 불리던 제도주의자들이 대통령의 돌발행동을 제어했지만 지금은 ‘충성파’들만 포진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관계자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과 짧은 집중력에 얽매인 ‘예스맨’(대통령 최측근) 집단이 이란과의 평화 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그들의 지휘체계 안에는 국가를 대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충동조절장애’ 트럼프, ‘알코올의존증 환자’ 닉슨

1기 트럼프행정부 시절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들과 정신과의사들은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한 언행이 시민들에게 지속적인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고 보고 이를 ‘트럼프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ump Stress Disorder, PTSD)’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정신질환의 일종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빗댄 개념이다.

2026년 4월 현재 세계 시민은 또다시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이란전쟁과 그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라는 실질적 위협과 결합돼 1기 당시의 불안과는 차원이 다른 실존적 공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발 PTSD는 부메랑이 돼 트럼프의 목을 죄고 있다. AP 통신과 시카고대학 여론조사센터(NORC)가 22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33%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가 “국민이 버린 대통령” “재앙(Disaster)”이라고 비아냥댔던 바이든의 36%보다 더 낮다. 일각에서는 이런 일련의 흐름이 하야 직전 닉슨의 행로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충동조절장애’의 트럼프와 ‘알코올의존증 환자’ 닉슨의 닮은꼴 찾기는 이란전쟁 국면의 또다른 관전포인트가 된 것 같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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