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석유 최고가격제, 출구전략은
‘기름 값 안정인가, 시장 왜곡인가’
세금으로 ‘고소득층까지 지원’ 논란 … 단계별 정상화와 선별지원이 해법
정부가 석유가격 최고제를 네 차례 연속 시행하며 가격통제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24일 0시부터 4차 최고가격을 기존 수준으로 동결하고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을 유지하기로 했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최근 2주간 휘발유 8%, 경유 14%, 등유 2% 하락했음에도 인하 대신 동결을 선택한 것이다.
◆물가안정·수요관리 두 마리토끼 잡을까 = 산업부는 물가안정과 수요관리라는 이중 목표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번 조치는 정책의 본질적 한계를 다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국제가격 하락분을 반영했을 경우 휘발유 약 100원, 경유 약 200원의 인하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가격인하가 소비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동결을 선택했다. 가격을 낮추면 소비가 늘고, 가격을 유지하면 물가부담이 지속되는 ‘정책 딜레마’의 단면이다.
단기적으론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실시하지 않았을 경우 휘발유 2200원, 경유 2800원 수준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점을 고려하면 현재 가격은 상당한 억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반복될수록 구조적 부작용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왜곡이다. 시장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가격이 고정되면서 수급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자원배분 효율이 떨어진다.
동시에 소비억제 기능도 약화된다. 가격이 낮게 유지되면 에너지 절약 유인이 줄어들어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 3월 하순엔 휘발유 소비가 2주일 새 6%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정유사 손실보전액 1조원 넘을 듯 = 재정 부담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정유사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는 구조상 제도 장기화는 곧 재정지출 확대를 의미한다. 에너지업계에서는 국민세금으로 충당해야할 국내 정유사의 손실 보전액이 1조원을 넘을 것이란 추산도 나온다.
특히 동일한 가격통제 혜택이 모든 소비자에게 적용되면서 결과적으로 고소득층까지 포함한 전 국민 지원이라는 구조적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기능 훼손도 우려된다. 가격결정이 정책에 의해 좌우되면서 정유사와 유통시장의 자율성이 약화되고, 장기적으로는 투자위축과 공급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유지는 단기 대응에 유효하지만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때문에 정책 전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대안으로는 가격통제 대신 선별지원 방식이 제기된다. 저소득층과 에너지 취약계층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에너지 바우처를 확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유류세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시장가격 기능을 유지하면서 부담을 완화하는 접근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부 개입보다 시장 순기능 인정해야” = 출구전략 역시 핵심 과제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단계적 정상화다. 최고가격을 한 번에 폐지하기보다 점진적으로 인상해 시장가격에 수렴시키는 방식이다. 국제유가 안정시 자동 종료 기준을 설정하거나, 손실보전 재정에 한도를 두는 제도적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도 유사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최고가격제를 한 번에 폐지하지 않고 2~3회에 걸쳐 점진적으로 인상한 뒤 일몰해야 한다”며 “저소득층 중심의 선별 지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정락 카이스트 교수는 “초기 불안심리가 완화된 만큼 정부 개입보다 시장 순기능을 통해 에너지 절약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석유가격 최고제는 ‘국민 불안심리 해소와 급격한 물가인상 억제’의 처방책에서 출발했지만 4차까지 이어지면서 보다 정교한 전환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