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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과 수학 소홀의 ‘패러독스’

2026-04-24 13:00:01 게재

아주대 총장을 지낸 박형주 석좌교수는 수학자다. 국내 역대 대학총장 중 수학자는 극히 드물다. 고교 1학년 2학기 때 자퇴했다.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물리학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듬해 수석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바로 그해 대입으로 서울대 물리대에 입학했다. 또래보다 1년 일찍 대학생이 됐다.

그는 물리학자가 아닌 수학자가 됐다. “물리학과 3학년 때 수학 과목을 들으러 갔다가 스무살에 요절한 19세기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에 전율을 느꼈어요. 갈루아는 2차 방정식은 왜 근의 공식이 존재하는지, 5차 방정식은 왜 그런 근의 공식이 존재할 수 없는지를 증명했죠. 아인슈타인은 저를 물리학, 갈루아는 수학에 빠지게 한 결정적 인물이죠.”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총장처럼 수학자로의 변신은 평범한 일은 아니다. 그는 수학자로서 여러 실험을 했는데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프랑스 명문고생과 한국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수학 문제지를 바꿔 푸는 실험을 했어요. 두 나라 학생 모두 성적이 형편없었죠. 이유는 간단했어요. 한국 학생은 120분 동안 5문제를 푸는 프랑스식 문제가 생소했고, 프랑스 학생은 50분 동안 20문제를 푸는 한국식 문제가 낯설었던 거죠. 학생들은 모두 이런 문제는 처음 풀어본다는 반응이었어요.”

인수분해 배우는 시기에 수학 흥미도 판가름

학생이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어떤 시험을 치르고 어떤 피드백을 받느냐는 중요하다. 학생의 학습 패턴과 사고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생의 수학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는 미국 영국 프랑스 학생보다 월등히 높다. 그렇다면 걸출한 수학자도 나와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수학은 중학생 때 흥미도와 실력이 극명하게 갈린다고 한다. 수학자들은 ‘인수분해’ 공부 시점을 변곡점으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학생의 흥미를 돋우도록 수준별 또는 스토리텔링식 교수법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빨리 풀어 정답 고르는 교육이 대세다. ‘수포자’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수학 잘했던 학생은 강점을 살리지도 못한다. 대학의 인문계열 학생들이 특히 그렇다. 대부분 수학의 ‘수’ 자도 건드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공학·자연계열은 수학이 더 중요해진다. 인공지능(AI) 시대엔 수학은 파워엔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수학 교육은 역주행한다. 올해 고3이 치를 2027학년도 대입을 보자. 전국 4년제 대학 174개교 중 이공계 학과에서 미적분·기하를 응시과목으로 지정하지 않은 대학이 166곳(95.4%)이다. 나머지 8곳도 서울대를 제외하면 한두개 학과에만 응시토록 했다. 이처럼 중요한 분석은 뜻밖에도 입시 학원이 내놓았다. 교육 당국은 대체 뭘 하고 있나.

2028학년도 대입은 더 요동친다. 수능에서 심화(미적분·기하) 수학이 빠진다. 수험생들은 문과 수준의 공통 수학시험만 치르면 된다. 문·이과 구분을 없애는 융합교육과 수학을 소홀히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미적분과 기하는 AI·반도체·양자컴퓨터 등 첨단 과학기술의 기초언어나 다름없다. 첨단 과학기술에 인생을 걸 공학도에게 느슨한 수학 실력을 요구하는 게 AI 강국을 표방한 대한민국이 옳게 방향을 잡은 것인지 의문이다.

수학 개편 발표 당시 교육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고교에서 심화 수학 기본개념은 다 배운다. 이공계열 진학 희망생은 고교에서 선택하면 되고 대학은 그런 고교 과정을 대입에 반영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고 학생 부담과 사교육비가 줄까. 시험 치르지 않을 영역을 공부할 학생, 그 영역을 열정적으로 가르칠 교사가 얼마나 될까.

수능서 미적분·기하 제외가 옳은 일일까

박형주 전 총장의 말대로 평가방식과 학습법의 상관관계는 밀접하다. 즉 교육의 ‘환류효과(washback effect)’를 잊어선 안된다. 출제·교수법·평가방법 재구조화, 대입용이 아닌 AI 시대의 ‘수학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이유다.

그래서 리시 수낵 영국 전 총리의 수학 ‘중시’ 메시지는 여전히 울림이 있다. “수학은 최적의 주택담보 대출과 예·적금을 찾을 수 있는 기술은 물론,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수학 의무교육 기간을 만 16세에서 만 18세(한국의 고3)까지로 확대한다.”(2024년 신년 연설 중)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