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된 파업, 항고로 다시 제한 시도”

2026-04-28 13:00:04 게재

삼성바이오로직스, 노동자 쟁의권 놓고 충돌 … 현장 갈등·안전 논란 겹쳐

바이오의약품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 쟁의권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점화됐다. 법원이 다수 공정에서 파업을 허용했지만 회사가 항고에 나서면서 이 문제가 전체 산업현장의 필수유지업무 범위 논란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2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재판장 유아람)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앞서 회사는 배양·정제 9개 전 공정에 대해 파업을 금지해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을 신청했다. 노동조합법 38조2항은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은 쟁의행위 기간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제품이 부패하지 않도록 유지·보관하는 마지막 공정인 농축·버퍼 교환, 원액 충전, 버퍼 제조·공급 등 3개 공정만 파업을 제한하고 나머지 6개 공정은 파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생산 활동’과 ‘변질·부패 방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기존 상태를 유지·보존하는 작업은 계속돼야 하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활동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회사측 주장대로 해석할 경우 생산과 보존의 구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법원은 ‘약간의 추가 작업만으로 원료·제품 폐기를 방지할 수 있는 공정’에 한해 파업 제한이 가능하다고 봤다. 사실상 생산이 완료된 이후 보존을 위한 마지막 단계만 필수유지업무로 인정한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동조합은 예정대로 다음 달 1일부터 5일간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법원이 파업을 금지한 3개 공정과 관련된 400여명은 제외한다. 전체 노조원 수는 임직원의 약 75%인 3689명이다.

회사측은 인용되지 않은 공정에 대해서도 파업 제한이 필요하다며 즉시 항고했다. 연속공정 특성상 일부 공정만 중단되더라도 전체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쟁의 제한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남훈 노조 조직국장은 “전체 공정의 말단부 일부에 한해서만 작업 필요성을 인정한 판결이라서 파업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허용된 파업을 항고라는 수단으로 다시 제한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파업 대응을 둘러싼 현장 갈등도 커지고 있다. 회사는 파업에 대응해 신입사원을 생산 현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입사원들은 아직 부서 배치를 받지 않은 상태로 약 5주간의 공통·직무 교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안전과 품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국장은 “신입사원이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 공정이나 물류 업무에 투입될 경우 안전과 의약품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회사에 이런 입장을 공문으로 경고했다”고 말했다.

반면 회사측은 보조 업무 중심 투입이라 품질이나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신입사원들은 5주간의 공통·직무 교육을 수료한 후 메인 공정이 아닌 자재이동 등 생산지원 업무 위주로 수행할 예정”이라며 “교대근무 투입이 아닌 주간업무에 한해, 품질이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조업무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노사 갈등은 임금·성과급 문제에서 시작됐다. 앞서 지난 22일 열린 단체 투쟁결의대회에는 약 2000명의 노조원이 참석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노조는 지난해 2조원대 영업이익에 걸맞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총 6.2% 임금 인상과 격려금 200%, 교대수당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는 성과급 상한 제도 폐지와 평균 14% 임금 인상, 격려금 3000만원, 3년간 자사주 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1공장 전경. 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이번 사안의 핵심 쟁점은 ‘필수유지업무’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시설 손상이나 원료·제품 부패를 막기 위한 작업은 파업 중에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이를 엄격하게 해석해 최소 범위만 인정했지만 항고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항고심 결과에 따라 연속공정 기반 첨단 산업 전반에서 쟁의권 범위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동계는 이번 항고가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확대해 쟁의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연속공정 구조를 이유로 더 많은 공정을 ‘중단할 수 없는 영역’으로 포함시킬 경우 파업은 가능하더라도 실질적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회사측은 공정 안정성과 품질 리스크를 고려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정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이 흔들릴 경우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계약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계는 필수유지업무 범위 확대를 경계하고 있고 산업계는 공정 안정성을 이유로 제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이 어디까지 노동권을 보장하고 어디까지 산업 특수성을 반영할지 주목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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