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로 미 대기업 웃고, 소비자 울상
수출대기업은 환차익 기대 수입기업·가계는 비용 압박
달러 약세가 미국의 대형 글로벌 기업에는 실적 개선 요인이 되고 있지만, 수입품에 의존하는 내수 기업과 소비자에게는 생활비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AP통신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달러 가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주요 통화 대비 약 10% 하락했다. 달러화 약세는 미국 제품의 해외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매출을 달러로 환산할 때 기업 실적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수입품 가격을 밀어 올려 미국 내 물가 부담을 키우는 요인도 된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경제연구소(AIER)의 토머스 새비지 이코노미스트는 “일종의 숨은 세금”이라며 “달러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약한 달러로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달러 약세가 미국 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드러내 왔다.
실제로 필립모리스와 코카콜라 등 해외 매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우호적인 환율 효과”를 언급했다. 호텔기업 인터컨티넨털호텔스그룹의 엘리 말루프 최고경영자도 2월 실적 발표에서 “많은 경우 달러 약세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AP는 미국 기업 대부분이 해외가 아니라 국내 고객을 상대로 사업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에게 약한 달러는 수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바닷가재 운송업체 랍스터보이스를 운영하는 트래비스 마데이라는 매출의 약 80%를 미국 내에서 올린다. 그는 미끼와 캐나다산 바닷가재 수입 비용이 올랐다며 “수출업자들은 달러 약세에서 이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펜실베이니아주 의료용품 제조업체 젠텔의 데이비드 나바지오 최고경영자는 브라질, 파라과이,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공장에서 비용이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1년 전에는 이런 것들이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달러 약세는 해외여행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미국인이 많이 찾는 멕시코에서는 페소 대비 달러 가치가 2025년 초보다 약 16% 낮아졌다. 스위스프랑,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덴마크 크로네, 스웨덴 크로나, 유로에 대해서도 약 10~17% 하락했다.
수입 물가 영향도 주목된다. 선진국에서는 통화 가치 하락분의 약 5~10%만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는 추정이 많지만, 이미 관세와 전쟁에 따른 연료비 상승이 겹친 상황에서는 작은 부담도 누적될 수 있다.
대표 사례가 커피다. 미국의 최대 커피 수입처인 브라질의 헤알화 대비 달러 가치는 약 13% 하락했다.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커피 가격은 지난 1년간 거의 19% 올랐다.
하버드대 경제학자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는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정책이 “달러에는 일종의 암 같은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달러 약세 자체는 누가 집권했더라도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달러는 15년 강세장을 이어왔다”며 “나는 달러가 여전히 터무니없이 고평가돼 있으며, 앞으로 5~6년에 걸쳐 15% 하락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로고프는 특히 원자재 가격이 오를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란 전쟁 여파로 연료 가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달러 약세까지 겹치면 미국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원자재 가격에 대해 “그것들은 그냥 오를 것”이라며 “달러가 어떤 수준이든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