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MRO 구상에 숨겨진 위험한 설계

2026-05-13 13:00:07 게재

한국을 미국 군수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 … 중국 입장에선 미군의 전진기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4월 21일 미 의회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날에는 2029년 1분기까지 조건 충족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리의 전작권 회수 시점을 재단하면서 정치적 훈수까지 두는 장면은 일개 미국 장성이 아니라 식민총독의 모습이다. 우리 국방부가 전작권 전환 시기는 미확정이며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은 것은 당연했다. 전작권은 미국 장군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군 통수권과 직결된 주권문제다.

2025년 4월 9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워싱턴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 북한등 인도태평양지역의 안보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 출처 미국 공공정책 전문 방송 C-SPAN 화면

전작권,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맞물려

미국은 한국이 더 큰 방위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군사 지휘권 역시 한국이 갖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온갖 조건과 검증을 내세워 시기를 뒤로 밀어왔다. 한국군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군사체계를 미국식 작전 개념에 계속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한국은 더 많은 미국산 무기를 사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더 무거운 군사적 의무를 짊어졌다.

전작권 조기 회수는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 주권국의 책무다. 중요한 것은 전작권 문제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에 방위의 몫을 넘기려는 속내에는 주한미군을 북한 억지에만 묶어두지 않고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작전에 자유롭게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의 전략 속에서 한국은 이미 중국 견제의 일부로 재배치되어 있다. 비록 2006년의 양국 외교장관 공동성명이 한국인의 의지에 반해 우리가 역내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문자화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전략유연은 기정사실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미군이 자유자재로 한국을 들락거리겠다는 얘기다. 첫째, 병력 이동의 자유다. 둘째, 무기와 장비 이동의 자유다. 셋째, 한국 내 기지와 시설을 미국의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쓰겠다는 뜻이다. 주한미군이 밖으로 나가고 역외 미군이 수시로 들어오며, 한국의 땅과 시설을 미국의 세계 전략을 떠받치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실제로 오산의 미 제7공군은 미 태평양공군의 지휘를 받아 제멋대로 한국을 출입하고 있다. 브런슨이 자주 언급했듯이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고정되어 있는 ‘항공모함’일 뿐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제7공군 말고도 이미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은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무기와 장비를 중동으로 차출했다. 미국에게 한반도 전력은 ‘한반도 전용’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돌려쓰는 ‘유동 자산’이다.

한국 입장에서 미군의 유연성은 결정적 위협이다. 한국의 안보에 공백이 생긴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미국이 한국군에게 전면을 맡기려는 이유다. 그래야 미국이 손을 비워 중국 전선에 더 유연하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4월 미 의회에서 또 다른 핵심사안을 거론했다. ‘권역 지속지원 허브’(RSH)와 ‘유지·보수·정비(MRO)’라는 낯선 용어였다. 앞서 기술한 전략적 유연성의 세번째 요소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을 미국 군사자산의 거대한 수리소이자 군수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한국의 항만과 조선소, 공군기지와 정비시설은 미국 전쟁수행 능력을 보장하는 핵심 군사 인프라다. 그러나 중국의 시각에서 한국은 미군의 전진기지라는 것을 뜻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변화가 평시의 항만 운영과 정비 계약, 군수지원 협약 같은 일상적 절차를 통해 조용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택과 부산의 항만, 거제와 울산의 조선·정비설비가 미군 함정과 수송자산의 상시 순환 거점으로 굳어지면 한국은 직접 총 한발 쏘지 않아도 미국의 역외 작전을 떠받치는 후방기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밖에서 충돌이 생길 경우 한국의 시설과 노동력, 물류망이 먼저 동원될 것이고, 그 결과로 한국은 상대국의 감시와 보복 위험까지 함께 떠안게 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의 존재와 사드 레이더의 운용까지 더해보면 그림은 더욱 선명해진다. 미국은 늘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군사적 배치는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미국은 사전 보고도 우리의 허락도 없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공군 훈련을 하면서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했다. 중국이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로 여기는 것은 과도한 예민함이 아니다.

경제적 이득과 국가안보 맞바꾸는 거래

주변국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냉정한 판단이다. 결론은 뻔하다. 미국이 기획하고 있는 한국의 전진기지화를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MRO를 두고 조선업의 일감이 늘어난다거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시각이다.

미국과 한국의 숭미주의자들은 바로 그러한 측면을 강조해 한국인을 현혹시킬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정비 능력에 손을 뻗는 이유는 산업협력을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똑똑히 바라보아야 한다. 산업이 아니라 군사 인프라의 확장이다. 한국이 얻을 얼마간의 경제적 이익 뒤에는 한반도 밖 분쟁에 휘말릴 위험과 주변국과의 긴장 고조라는 막대한 안보비용이 숨어 있다. 경제적 이득과 국가안보를 맞바꾸는 위험천만한 거래다.

일본은 이미 미 해군의 전진 정비 체계를 구축해 자국 기지를 미국의 작전 전초기지로 내어주었다. 미국이 한국에서 추진하는 MRO 협력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구상이다. 일본이 미 해군 제7함대의 전진배치와 전진 정비를 뒷받침하는 양자동맹형 거점이라면, 한국의 MRO 구상은 인도·태평양 전역의 미군 작전을 떠받치는 광역형 거점 구상이라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더군다나 한국은 중국과 같은 대륙에 붙어 있는 미국의 유일한 기지다. 그러니 한국의 조선소와 항만과 비행장이 미국 군사망의 한 고리가 되면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구 운영체계 속으로 더 깊숙이 편입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평택기지의 소유권을 언급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맹국 영토를 미국이 차지하고 자유롭게 써야 할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다. MRO 구상은 이러한 미국의 희망과 요구를 제도와 시설의 형태로 고착화하려는 과정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영국은 싱가포르를 거대한 보급과 수리의 거점으로 삼아 제국주의 함대의 힘을 유지했다. 싱가포르가 식민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주권국가의 영토와 산업 기반을 자국의 전쟁 수행망 속에 편입시키려는 미국의 식민적 발상은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작권 반환을 차일피일하고 주한미군이 마음대로 한국을 들락거리면서 우리의 기지와 항만은 제 집처럼 쓰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대등한 동맹의 모습일 리가 없다.

한미동맹이 절대선이라는 위험한 시각

대책은 분명해야 한다. 첫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당연시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둘째, MRO 협력은 철저히 경제적으로만 우리가 이용하되 군사안보 목적과의 결합은 막아야 한다. 셋째, 전작권을 조기에 회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연합 체제를 벗어난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전구 전략에 이용하려 한다면 그 고리를 끊는 시작점은 지휘권 회수다. 넷째, 한미동맹을 절대선으로 떠받드는 자세는 이제 떨쳐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주의 길을 걷는 성숙한 외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위험을 떠안을 수는 없다. 한국의 안보를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의 땅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국은 독립주권국이다. 왜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가 되어야 하는가.

평화는 강대국의 패권 전략에 순응하는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자주와 평화는 전작권 회수와 전략적 유연성 통제, 그리고 군사적 목적의 정비 허브 구상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경렬

전직 외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