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대주주 적격성 논란에도 ‘현대자산운용 매각’ 강행
총수 일가 일감몰아주기 제재 받은 건설사에 금융회사 넘기나
무궁화신탁 재무건전성 악화되자 계열사 매각 서둘러 진행
승인에 초점 맞춘 졸속 심사 우려 … 13일 금융위 정례회의 회부
현대자산운용을 인수하려는 건설사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논란에도 금융당국이 매각을 강행하면서 졸속 심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현대자산운용의 대주주를 제일건설과 오케이로지웰 컨소시엄으로 변경하는 안건에 대해 승인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으며, 금융위원회에서는 빠른 속도로 심사가 진행됐다.
대주주 적격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은 수개월 간 사전 협의 등을 거쳐 승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심사를 진행했으며, 금융위는 논란이 된 부분과 관련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오후 정례회의를 열고 현대자산운용의 대주주를 제일건설과 오케이로지웰 컨소시엄으로 변경하는 안건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현대자산운용의 대주주는 현재 무궁화신탁으로 지분 94%를 보유하고 있다.
무궁화신탁은 지난 2024년 11월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으면서 자회사인 현대자산운용을 매각하기로 했다.
무궁화신탁은 2024년 9월 기준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69%로 경영개선명령 기준인 100%에 미달하는 등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벌떼 입찰’ 제재 받은 건설사를 금융회사 대주주로 = 제일건설은 지난해 사모자산운용사인 제이커브운용을 인수하면서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종합자산운용사인 현대자산운용 인수에 나섰다.
사모자산운용사와 달리 공모펀드 운용이 가능한 종합자산운용사를 인수하려면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변경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문제가 있거나 논란이 될 수 있는 인수자를 금융당국이 걸러내기 위해 규제 문턱을 높여놓은 것이다.
제일건설은 지난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수일가가 소유한 계열회사를 부당지원한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96억8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제일건설이 공공택지에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총수일가 소유의 계열회사인 제이제이건설과 제이아이건설에 상당한 규모의 공사 일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제이제이건설은 제일건설의 최대주주 유재훈씨와 배우자 박현해씨 등 총수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제이아이건설은 2017년부터 제이제이건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건설은 공공택지 아파트 분양과 건설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소위 ‘벌떼입찰’ 등을 통해 확보한 공공택지에 ‘풍경채’라는 브랜드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사업을 영위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벌떼입찰은 추첨 방식으로 공급되는 공공택지 분양 입찰에 다수의 계열사 및 비계열 협력사들을 동원해 참가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위는 “제일건설은 그룹 내에서 아파트 시공사업을 단독 수행할 수 있는 신용등급과 시공능력을 갖춘 유일한 건설사로서 그룹 차원에서 확보한 공공택지 개발사업의 시공권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있었다”며 “반면 제이제이건설과 제이아이건설은 제일건설로부터 하도급을 받거나 소규모 관급공사를 수주하는 수준에 불과해 아파트 건설공사를 수행할 시공역량이 없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제일건설은 제이제이건설과 제이아이건설이 건설실적을 확보하고 수익성을 증대할 수 있도록 자신이 시공권을 확보한 공공택지 개발사업 7건(제이제이건설 4건, 제이아이건설 3건)에서 합리적인 사유 없이 제이제이건설 또는 제이아이건설을 공동시공사로 선정해 공동도급 계약을 체결하고 상당한 규모의 공사 일감을 제공했다는 게 공정위 조사 결과다.
제일건설의 지원행위로 건설실적을 확보한 제이제이건설과 제이아이건설은 공공택지 1순위 청약자격 요건인 3년간 300세대 주택건설 실적을 충족, 이후 공공택지 추첨에 당첨됐다. 공정위는 “제이제이건설이 2018년 배당을 실시해 총수일가에 100억원을 지급하며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감사인 “특수관계자 자금 거래 주의” = 지난해 제일건설 감사보고서에서 외부감사인은 강조사항으로 “감사의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항으로 이용자는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에서 기술하고 있는 특수관계자와의 영업 및 자금거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석에 보면 제일건설은 계열사·총수일가 관련 회사 등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규모가 크다. 2025년 기준 특수관계자에 대한 채권 규모가 6110억원에 달한다. 채권에는 대여금 뿐만 아니라 공사미수금, 미수금, 미수수익 등이 포함돼 있다. 주주임원에 대한 채권도 41억원이 있다. 대여금 규모는 3635억원이다. 2024년 기준 차입금은 1260억원 가량 됐지만 지난해 1117만원으로 줄었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염두에 두고 줄였을 가능성이 있다.
제일건설은 지난해 121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장기차입금은 2757억원으로 늘었다. 2024년 744억원에서 270% 증가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자산운용이 제일건설을 비롯한 특수관계자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제일건설의 금융업 진출이 건설 경기 악화에 따른 자금난 해소를 위한 측면이 강하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자산운용의 운용펀드 설정규모는 7조4008억원이며, 이중 부동산 관련이 1조3360억원이다. 특수관계자간 거래가 많은 제일건설의 특성상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부업체 운영도 논란, 2029년까지 영업 연장 = 제일건설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있는 오케이로지웰은 대부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오케이로지웰 김덕천 대표는 하츠만투자대부를 소유하고 있다. 하츠만투자대부의 대부업 등록 유효기간(통상 3년 후 갱신)은 지난달 14일까지였지만, 등록 유효기간을 2029년 4월 13일까지 연장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대부업체의 금융회사 인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OK금융그룹은 2014년 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10년 이내에 대부업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했고, 실제로 계열 대부업체들은 모두 폐업했다. 웰컴금융그룹도 저축은행을 인수한 후 대부업 라이선스를 모두 반납했다.
금융당국은 무궁화신탁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대자산운용 매각을 서둘러 진행했다. 금감원은 대주주 적격성 논란으로 인해 수개월간 검토를 거듭했지만 결국 승인으로 가닥을 잡았고, 금융위에서도 여러 논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무궁화신탁의 재무건전성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무궁화신탁의 자금 마련이 시급하다고 해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거래를 금융당국이 승인해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실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주주 변경 승인에 관여한 인사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궁화신탁의 경영권 지분을 담보로 잡고 있는 SK증권은 올해 3월 우선협상대상자 교체 방안을 추진했고, 금감원에도 이 같은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증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인수자로 나선 업체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없고 제일건설 컨소시엄 보다 인수 가격도 더 높게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모두 짚어봤고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보완을 했다”며 “또 다른 인수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국으로서는 회사가 계약을 체결해서 신청하면 적격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지, 계약에 개입하거나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