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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이 흔든 세계화, 그래도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2026-05-13 13:00:19 게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은 단순한 지역분쟁을 넘어 세계 경제 질서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되었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 에너지 가격 급등, 공급망 교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세계화 체제가 얼마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보여주었다.

여기에 미중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위협까지 겹치면서 세계화의 미래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국제질서를 지탱하던 동맹 시스템마저 흔들리면서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국제화의 상위 개념으로서의 세계화는 1980년대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 무역장벽 축소, 시장 확대 필요성, 생산비용 절감, 월가 자금의 투자처 확대 욕구 등이 맞물리며 세계화는 급속히 확산됐다. 그 과정에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규모의 경제 실현, 국가와 기업 간 경쟁 촉진, 개도국 경제성장 같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양극화 심화, 선진국 중산층 붕괴, 서민경제 악화, 농촌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커졌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노동계층의 반발이 거세졌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같은 정치적 변화의 배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와 기업은 세계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장해왔다.

반세계화 흐름에도 교역규모 꾸준히 증가

한국도 마찬가지다. 1995년 김영삼정부는 세계화를 국가 전략으로 제시하며 국제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준비 부족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방향 자체는 시대흐름에 부합했다. 독일 경제성장의 핵심인 히든 챔피언들도 핵심역량 집중, 가치중심 전략, 해외시장 확대를 통해 세계화를 적극 활용해왔다.

중동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세계화 흐름에 제동을 거는 사건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 공급망 불안, 동맹체제 약화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선진국 중산층과 서민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면서 보호주의와 반세계화 정서도 확산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세계화 수준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직전인 2000년 수준으로 후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그는 세계화의 정치적 비용이 경제적 이익을 초과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각국은 공급망 안정과 안보를 이유로 니어쇼어링(nearshoring),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산업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전체 흐름 자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자본 노동 기술 정보 시장이 국가 간에 너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촉진했던 구조적 요인들도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 교역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세계 수출 규모는 2000년 7조9600억달러에서 2010년 19조200억달러, 2020년 22조4800억 달러로 확대됐고, 2025년에는 33조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하루 외환거래 규모 역시 2005년 1조9000억달러에서 2020년 6조6000억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세계화가 단순히 제조업 중심 교역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마크 로빈슨이 주장했듯 앞으로의 세계화는 컨테이너 중심의 물류가 아니라 지식 정보 데이터 지식재산권 등 서비스 중심의 디지털 세계화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사회에서 디지털사회로의 전환이 세계화의 형태 자체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지정학 갈등 커질수록 전략적 유연성 중요

앞으로의 세계화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보호주의 강화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 현상이 확대되고, 지역화와 가치기반 경제협력이 강화될 것이다. 동시에 디지털 기술 발전은 국경을 넘어선 정보·서비스 교류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세계화 전략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지정학적 갈등이 커질수록 전략적 유연성이 중요해진다.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와도 경제협력의 통로를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국가의 경제적 이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원락 한국산학협동연구원 이사 전 코스닥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