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바꾸는 재판 ④

판례 검색 넘어 양형 검토까지

2026-05-07 13:00:47 게재

사법부 AI, 판단 영역 확장 … 재판 구조 변화 논쟁 확산

효율성과 공정성 사이 긴장 … AI 허용 범위 논쟁 본격화

판례 검색에서 출발한 사법부 인공지능(AI)이 양형 검토 등 판단 인접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판결은 여전히 법관의 몫이지만, 판단에 이르는 과정은 이미 달라지기 시작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재판지원 AI 사업 1단계를 시작한 데 이어 올해는 양형위원회 주관의 ‘사법부 AI 기반 형사재판 및 양형지원 지능형 플랫폼 구축’ 1차년도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재판지원 AI는 판례 검색과 자료 요약, 쟁점 정리 등 재판 준비 단계에 활용되고 있다. 판사가 사건 내용을 입력하면 관련 판례와 법령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법원은 이를 판단 이전 단계의 보조 기능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법관에게 있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변화의 방향이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판사가 직접 자료를 찾고 검토해야 했다면 이제는 AI가 판례와 쟁점을 먼저 제시하고 법관이 이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바꾸는 건 ‘판결’ 아닌 ‘과정’ =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한 효율성 향상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특정 판례와 쟁점을 우선 제시할 경우 이후 검토와 판단이 일정한 방향 안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과 자체보다 판단이 형성되는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재판 구조의 균형 문제도 제기된다. 재판지원 AI는 현재 법원 내부망에서만 사용된다. 변호사와 당사자는 동일한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재판부와 변호인 사이 정보 접근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무기대등 원칙’과 연결해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책임 구조 역시 논쟁 지점이다. AI가 제공한 정보가 잘못됐더라도 최종 책임은 법관에게 귀속된다. 법원은 AI를 참고자료로 한정하고 있지만, 실제 재판 과정에서의 영향력까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양형 AI … 판단 인접 영역으로 = 사법부 내부에서는 이미 다음 단계 논의도 시작됐다. 법원행정처의 ‘2026년 사법부 정보화사업 계획’에는 ‘AI 기반 형사재판 및 양형 지원을 위한 지능형 플랫폼 구축’ 필요성이 포함돼 있다. 범죄 유형과 전과 여부, 피해 규모 등을 분석해 유사 사건을 비교·제시하는 방식이다. 다만 사법부는 이를 형량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참고자료 제공 도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양형 AI는 재판지원 AI보다 더 민감한 영역으로 평가된다. 재판지원 AI가 ‘검색과 정리’ 단계라면 양형 AI는 사실상 판단에 근접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법관을 위한 AI 가이드북’ 역시 “AI는 법관의 보조도구일 뿐 판단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법학계에서도 재판지원 AI의 영향 범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와 사법정책연구원 등의 연구에서는 알고리즘 편향과 설명가능성 부족, 법관 독립 원칙 약화 가능성이 주요 쟁점으로 거론된다.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등은 설명가능성과 책임 구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재판 AI가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재판 단계의 디지털 대응 역량 부족을 지적하며 수사 단계와의 격차를 문제로 제기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법 시스템 전반의 균형과 연결된 쟁점이다.

쟁점은 효율성과 공정성의 균형이다. 재판지원 AI는 재판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재판 구조 변화 가능성도 안고 있다. 양형 AI 도입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남은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사법부는 AI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법원행정처는 “재판지원 AI가 단순히 재판과 사법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를 넘어, 국민의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더욱 충실히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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