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이냐 손정의냐 … 가치 투자와 AI 베팅의 충돌
현금 쌓은 버크셔
빚 늘린 소프트뱅크
엇갈린 투자철학 시험대
버크셔는 워렌 버핏 전 최고경영자(CEO)가 구축한 가치 투자의 상징이다. 싼 가격에 튼튼한 회사를 사서 오래 보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금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버크셔의 현금 보유액은 거의 4000억달러에 이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현금이 시가총액의 40%에 달하며, 지난 20년 평균의 두 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크셔는 최근 몇 년 동안 자사주 매입도 거의 하지 않았다. 회사가 스스로 주가를 비싸다고 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배당도 1967년 이후 하지 않았다. 버핏의 후계자인 그레그 아벨 CEO 앞에 놓인 고민도 분명하다. 지난 1년 동안 버크셔 주가는 시장(S&P500 지수) 수익률을 40%가량 밑돌았다.
버크셔가 흔들려도 붕괴 속도는 느릴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버핏의 의결권이 아벨 CEO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계속 오르면 현금을 쌓아두는 전략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아벨 CEO가 결국 현금을 배당으로 돌려주거나, 회사를 쪼개는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고 봤다.
반대편에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있다. 소프트뱅크는 현금보다 아이디어가 많고, AI와 기술 기업에 공격적으로 베팅한다. 최근 시장은 다시 소프트뱅크를 좋게 보고 있다.
핵심은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과 챗GPT 개발사 오픈AI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을 310억달러에 인수했고, 현재 Arm 가치는 2500억달러로 평가된다.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 87%를 보유하고 있다. 또 10월까지 오픈AI에 65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소프트뱅크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오픈AI의 두 번째 큰 외부 주주가 되며, 매년 30억달러를 오픈AI 제품 구매에 쓰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근 흐름은 손 회장의 베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FT는 7일 Arm이 자체 AI 반도체 수요를 바탕으로 2027년과 2028년 20억달러 매출을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약 한 달 전 신제품 공개 때 제시했던 전망의 두 배다.
소프트뱅크 주가는 7일 도쿄증시에서 18% 넘게 급등했다. MST파이낸셜의 데이비드 깁슨 애널리스트는 Arm 주가가 한 달 만에 60% 오른 점, 오픈AI 최신 모델 공개 이후 투자자 인식이 바뀐 점이 소프트뱅크 주가 회복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채는 여전히 위험 요소다. 이코노미스트는 소프트뱅크의 영업 현금흐름만으로는 투자 자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 지분은 이미 지난해 10월 모두 팔았다. 통신회사 T모바일, 음식배달회사 그랩, 중국 차량호출업체 디디의 지분 가치는 1년 전보다 낮아졌다.
소프트뱅크는 오픈AI 투자를 위해 400억달러 규모 브리지론(장기 자금조달이나 자산매각 완료전까지 임시로 쓰는 단기연결대출)을 받았고, 이 대출은 내년 3월 만기가 돌아온다. 회사는 부채 수준이 괜찮다고 설명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소프트뱅크가 내세우는 담보인정비율이 Arm과 일본 통신사업 지분을 담보로 빌린 280억달러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프트뱅크는 오픈AI 지분을 담보로 100억달러 추가 차입도 추진하고 있다.
결국 두 회사의 고민은 정반대다. 버크셔는 돈은 있지만 살 만한 회사를 찾지 못한다. 소프트뱅크는 살 것은 많지만 돈을 빌려야 한다. 버크셔의 위험은 지나친 신중함이고, 소프트뱅크의 위험은 과도한 모험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결론은 두 회사의 베팅이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이 계속 오르면 버크셔는 현금만 쌓아둔 회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AI 열풍이 식고 Arm 가치가 떨어지거나 오픈AI 상장이 어려워지면 소프트뱅크는 빚 상환 압박에 몰릴 수 있다. 가치 투자의 절제와 테크 투자의 대담함은 모두 시장에 필요한 전략이지만, 극단으로 갈 때는 둘 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평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