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는 돈벌이 치중, 금융당국은 사고 터져야 검사
기업 부실 경고 ‘자본시장 파수꾼’ 역할 제대로 못해
신용등급 평가대상 확대로 신평사 매출 늘었지만
평가 전문인력은 소폭 늘거나 오히려 줄어든 곳도
부동산 투자회사 제이알글로벌리츠가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부실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에 이어 또다시 투자적격등급을 유지하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신용평가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 금융당국이 10년 전 제도 개선과 관리·감독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행된 조치는 거의 없었다는 점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회사채·기업어음(CP) 등 직접금융 시장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신용등급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지만, 신평사에 대한 감독 체계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1일 신용평가 3사가 발간한 투명성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3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1595억원으로 2017년(1137억원) 대비 40.3% 증가했다.
한국신용평가 매출액은 493억원으로 2017년(337억원) 대비 46% 늘어나 증가폭이 가장 컸다. NICE신용평가는 같은 기간 355억원에서 504억원으로 42%, 한국기업평가는 445억원에서 598억원으로 34% 증가했다. 지난 8년간 매출액이 40% 증가한 배경에는 회사채 등 신용등급을 활용한 기업의 직접금융조달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과거 신평사의 신용등급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에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회사채, CP, 전자단기사채, ABCP, ABSTB, 유동화증권, PF 구조화금융 등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 커졌지만 검사는 약화 = 회사채 발행규모는 지난해 276조2510억원으로 2017년(144조238억원) 대비 91.8% 증가했다. CP와 단기사채 발행규모는 지난해 1663조3243억원으로 2017년(1376조4513억원) 대비 20.8% 늘었다.
신용등급을 활용한 직접금융 조달 규모는 지난해 1939조5753억원으로 2017년(1520조4751억원) 대비 27.6%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2016년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평사가 기업에 대한 사전 경보, 적시 경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시장평판 등에 의한 규율 미흡 △신평사가 발행기업의 영향력에 취약한 구조 △신평사에 대한 검사·제재 실효성 부족 등을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사건이 터진 이후에 신용등급을 낮추는 ‘늦장 등급조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당시 금융당국은 신평사의 취약 부문에 대한 테마를 선정해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방식으로 신평사 상시감독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엄중한 제재를 위한 인가취소 및 영업정지 조치의 실효성을 제고하기로 했다. 부실평가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자본시장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제도 개선만 이뤄졌고 시장 감시는 잠깐 강화됐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신용정보평가실을 신설, 신용평가 3사에 대한 검사·제재를 단행했다. 하지만 2년 만에 부서가 없어지고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업무는 자본시장감독국, 검사업무는 금융투자검사국으로 쪼개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당 부서의 경우 증권사 등 대형사 중심으로 감독·검사를 진행하고 주요 현안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검사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평사 자체만 놓고 보면 회사가 문을 닫아도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감독·검사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실제로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가 터졌을 때 금감원은 신평사들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그전까지 제대로 된 검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와 관련해서는 아직 검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금감원은 과거에도 동양사태가 터진 이후 신평사에 대한 특별검사를 벌인 바 있다.
신평사에 근무했던 한 금융권 인사는 “동양사태 이후 신평사들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한동안 금융당국의 검사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용 통제하면서 이익 극대화, 대주주 배당” = 그는 “신용평가사들이 비용을 통제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결국 대주주들이 배당으로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신용평가 대상이 늘고 상품도 복잡해졌지만 신용평가 3사의 신용평가 전문인력 규모는 소폭 증가하거나 오히려 줄었다.
한국기업평가 신용평가 전문인력은 75명으로 2017년(66명) 대비 9명(13.6%) 증가했다. 반면 NICE신용평가는 같은 기간 70명에서 65명으로 5명 줄었다. 3사 전체 증가율은 9.9%에 그쳤다.
한국기업평가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약 7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피치 계열에 지급한 배당금은 약 132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의 절반가량이 해외 대주주에 배당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신용평가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배당금은 약 166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의 약 90%를 무디스 측에 배당했다.
NICE신용평가는 NICE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지급한 배당금은 158억원으로 당기순이익 131억원보다 많다.
올해 3월 한국신용평가는 신임 대표이사로 패트릭 윤 전 크립토닷컴 한국 총괄을 선임했다. 윤 대표는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서는 소매금융 부행장, 비자(Visa)에서는 한국·몽골 지역 총괄 사장을 맡았다. 최근까지는 글로벌 가상자산 플랫폼인 크립토닷컴에서 한국 사업을 총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대주주인 무디스가 영어를 잘하고 영업 중심으로 활동한 인사들을 사장 자리에 앉혔다”며 “신용평가업무의 전문성과는 상관없는 인사”라고 말했다. 그는 “신용등급 평가를 제대로 하는 신평사들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