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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식물 1/5, 수억년 혈통 끊길 위기 놓였다

2026-05-11 13:00:04 게재

쿤밍 - 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이행 지표 전수 평가

기후변화 취약 지역에 집중, 서식지 이동만으로는 대응 한계

꽃피는 식물인 ‘속씨식물’ 전체의 진화 역사 중 21.2%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단순히 종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종마다 진화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생물다양성 보전 측면에서 진화적 관점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특정 종의 멸종은 수천만~수억년에 걸쳐 이어온 계통이 함께 사라진다는 의미다. 가까운 친척 종이 많은 경우엔 공유하는 계통이 많아 손실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친척 없이 오랜 세월 독자 계통을 이어온 종이 사라지면 그 손실은 훨씬 크다.

1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논문 ‘꽃피는 식물 생명의 나무 전반에 걸친 높은 멸종 위험’에 따르면, 속씨식물의 총 진화 역사 1조4450억년 중 21.2%인 3070억년 분량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이는 척추동물 평균(13%)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진화 역사는 속씨식물 전체의 계통수(생명의 나무)에서 각 가지가 독립적으로 진화해 온 시간을 합산한 값으로, 얼마나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생명선이 사라지느냐를 측정한다.

진화적으로 고유한 종일수록 독특한 특성(형질)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그 특성은 미래에 신약·소재·식량 등 인류가 아직 모르는 방식으로 쓰일 수 있다. 이처럼 진화 역사를 지키는 일은 미래 선택지를 다양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2022년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는 ‘종 수’만이 아니라 ‘진화 역사’를 생물다양성 보전의 공식 지표로 포함했다.

이번 연구는 GBF 이행 지표인 ‘계통 다양성(Phylogenetic Diversity) 지표’와 ‘EDGE 지수’에 식물 자료를 공식 제공하는 첫 전수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국제 생물다양성 평가는 척추동물 중심으로 이뤄져 식물은 평가 범위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평가 완료 비율을 살펴보면 척추동물이 80% 이상인 데 비해 속씨식물은 약 20%에 불과하다.

영국 큐 왕립식물원·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보이시 주립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현존하는 속씨식물 33만5497종 전체를 대상으로 계통수를 구축하고 멸종 위험을 평가했다. 연구팀은 ‘EDGE2 프로토콜’을 활용해 진화적으로 독특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선별했다. EDGE는 친척 종없이 오랜 기간 독자적으로 계통을 이어왔지만 보전 조치가 없으면 사라질 위험이 큰 종이다.

연구팀이 선별한 EDGE 식물은 엄격한 기준(IUCN 위협 평가 완료)을 통과한 5869종과 베이즈 혼합 모형으로 위협이 예측된 후보 4076종을 합해 모두 9945종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EDGE 목록으로 이전까지 가장 큰 동물 EDGE 연구(지느러미가 있는 어류·3만3000종)보다 10배 이상 크다.

1위 EDGE종은 온두라스 쿠수코 국립공원의 단일 산맥에만 분포하는 교목 ‘혼두로덴드론 우르체올라툼’이다. 상위 25종에는 아라세아에 과(7종)와 마그놀리아세아에 과(6종)가 집중됐다. 마그놀리아와 아모르포팔루스 속이 상위권에 채택된 이유는 이들이 비교적 오래된 계통인 데다 위협받는 종의 비율이 각각 66~67%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역별로는 마다가스카르(950종)·보르네오(561종)·에콰도르(446종)에 EDGE종이 가장 많이 집중됐다. 전체 EDGE종의 88.4%인 8794종이 단 하나의 식물 지리 구역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이다. 18개 핵심 지역은 모두 생물다양성 집중 지역과 겹친다. 9945종을 보전할 경우 예상 손실 진화 역사의 508억년을 지킬 수 있다. 전체 종의 3% 미만을 살리기만 해도 위협받는 속씨식물 진화 역사의 16.6%를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논문에서는 “위협받는 진화 역사의 절반을 지키려면 EDGE 점수 순위 기준 상위 5.9%의 멸종을 막으면 된다”며 “척추동물의 경우 9.6%가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식물 쪽이 더 효율적인 보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연구 한계는 있다. 종의 계통적 위치와 멸종 위험 불확실성이 큰 탓에 일부 종은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미평가나 데이터 부족 종이 많아 모형 기반 예측에 의존한 경우 추가 오차가 생길 수 있다. 논문에서는 “평가되지 않은 종 중 57.3%는 위협받지 않는 걸로 예측되지만 나머지에 대한 현장 평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가장 오래되고 고유한 종들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곳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1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논문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이동은 지역 식물 다양성을 유지하지만 멸종 위험을 줄이지는 못한다’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 따라 관속식물 6만7000종의 분포 모델을 분석했더니 7~16%가 금세기 말까지 서식지의 90% 이상을 잃어 고위험 멸종 상태가 될 수 있다. 고배출 시나리오에서는 피해가 열대 지역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었다. EDGE종이 집중된 마다가스카르·보르네오·에콰도르 등 열대 생물다양성 집중 지역이 기후변화 피해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다.

이 연구를 진행한 미국 UC데이비스·프랑스 생물다양성연구재단·중국 베이징사범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관속식물 6만7664종(전체 관속식물의 18%)을 대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식물 서식지 이동 데이터베이스(BioShifts·6579종 1만4488개 관측 기록)를 활용해 종별 이동 속도를 모델링했다. 또한 △식물 분포 기록 680만건 △10개 전지구 기후모델 △4가지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를 결합해 2081~2100년 서식지 분포를 예측했다.

이들 연구는 기후변화로 인한 식물 멸종을 막으려면 이동 경로를 터주는 일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보전에 대한 관심을 동물은 물론 진화적으로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식물 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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