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처투자 47%↑…한국은 민간 장기자금 유입 제한적

2026-05-12 13:00:05 게재

작년 미국 중심 AI 대규모 투자 유치 급증

유럽은 정책금융 마중물로 민간자본 유도

한국 14% 증가, 초기창업기업 비중은 하락

인공지능(AI) 분야의 급성장으로 글로벌 벤처투자 규모가 지난해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벤처투자 규모가 늘었지만 정책금융 중심의 시장 육성 방식이어서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민간 중심의 시장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KDB미래전략연구소가 발간한 산은 조사월보(4월)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벤처투자금액은 4693억달러(한화 약 692조원)로 전년 대비 47% 증가했다. 이중 대규모 투자 유치인 메가라운드(스타트업 기업이 1회 1억달러 이상 조달) 투자금액이 3072억달러로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지난해 4분기 벤처투자금액은 1520억달러로 지난 2022년 1분기 이후 가장 규모가 커서 강한 상승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벤처투자건수는 6506건으로 2021년 1분기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투자금액은 증가했지만 투자건수가 감소한 것은 최근 벤처투자가 소수의 대형 딜에 집중되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AI 투자 확대가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의 회복세를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AI분야 벤처투자 규모는 2587억달러로 2023년 대비 109% 증가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AI 벤처투자의 초기 단계 투자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5년 75%를 약간 상회하며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금액은 전체의 25%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초기 단계 벤처투자가 AI 관련 메가 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라고 설명했다.

지역적으로는 미국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미국의 벤처투자금액은 3278억달러로 2000억달러에 못 미쳤던 2023년 대비 크게 늘어난 가운데 아시아와 유럽은 정체 내지 소폭 회복한 수준이다. 미국은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금액기준으로 69.8%, 건수 기준으로 41%를 차지하고 있다.

벤처투자 역량이 미국보다 약한 유럽은 정책금융을 마중물로 민간자본을 유도하는 벤처시장 육성전략을 채택했다. 유럽연합(EU)의 정책금융 기관 그룹인 EIB그룹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700억유로(한화 약 121조원)의 자금을 공급해 2500억유로(434조원)의 민간 및 공공투자 유도 계획을 세웠다. 특히 EIB그룹은 유럽내 혁신기업이 후기 성장단계에서 자본공급기반이 약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스케일업 전용 대규모 재간접펀드인 ETCI를 별도 운용하고 있다.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는 기업형벤처캐피탈(CVC), 자산운용사, PE(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확대되며 투자 주체가 다변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건수는 벤처캐피탈 비중이 31%로 가장 높지만 투자금액은 PE, 자산운용사 및 CVC 등 대형 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한국은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금액이 1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2021년 15조9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이다. 투자건수는 4.6% 증가한 8542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국내외 금리 인하 및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 기조에 대한 시장의 중장기적 기대가 반영돼 신규 벤처펀드 결성금액도 전년 대비 34.1%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상위 3개 업종의 투자 비중은 ICT서비스(20.8%)가 가장 높고 바이오·의료(17.4%), 전기·기계·장비(14.6%) 순이다.

다만 성장기업에 대한 투자 선호 경향 등으로 창업 7년을 초과한 후기기업을 중심으로 투자 금액이 증가하고 창업 3년 이내의 초기 투자 비중은 3년 연속 하락했다.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는 전년대비 15.6% 증가해 전체의 54.4%를 차지하는 가운데 설립 7년 이하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전년 대비 1.1%p 감소했다.

특히 한국 벤처투자 시장은 민간 기반의 장기자금 유입이 제한적이다. 지난해 벤처펀드 결성액은 민간 80.8%, 정책금융 19.2%로 구성됐다. 영국과 독일의 정책금융비중이 각각 8%, 16%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민간부문에서도 장기자금 운용기관으로 볼 수 있는 연금·공제회 비중은 6.7% 수준으로 대규모 장기자금이 벤처 시장으로 충분히 유입되지 못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연기금은 자산운용시 안정적인 전통자산 위주로 투자하고 고위험, 저유동성의 벤처투자는 저조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정책금융은 초창기 벤처생태계 조성에 기여했지만 민간 중심의 자생력을 갖춘 시장으로 지속 성장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며 “벤처투자에 인내자본(장기 투자로 기업의 성장을 기다리는 자본)이 필수적이나 정부 재원만으로는 안정적인 장기자본 제공에 한계가 존재하므로 민간 장기자금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글로벌 벤처투자의 국내 투자비율이 2.1%에 불과하다는 점도 구조적 한계라고 언급했다. AI 등 핵심 기술 분야에 글로벌 벤처캐피탈 자금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자본 없이는 대형 투자 및 첨단분야 투자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주요국의 외국자본 벤처펀드 출자비중을 보면 인도가 87%로 가장 높고, 싱가포르(84%), 영국(74%), 독일(66%), 프랑스(19%), 중국(12%) 등의 순이다.

보고서는 “연기금 및 보험 등 민간 기반의 장기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금융환경을 조성해 장기적으로 시장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책금융은 초기 고위험 스케일업 등 자금공백 영역에서 마중물로 민간자본을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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