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산업재해범죄 양형기준 만든다

2026-05-12 13:00:48 게재

양형위, 설정 범위 논의

5년내 재범땐 가중처벌

중대시민재해범죄 제외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제기된 중대산업재해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중대시민재해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사례가 없어 이번 양형기준 설정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숨지게 하거나 다치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처벌이 강화될지 주목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동원)는 11일 제145차 전체회의를 열고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군 양형기준에 ‘중대재해 범죄’를 추가하는 내용의 양형기준 수정안을 심의했다.

양형기준은 효력이 생긴 뒤 공소제기된 범죄부터 적용한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지만, 법원조직법에 따라 양형기준에 어긋난 판결을 한 경우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하므로 무시 못할 영향력이 있다.

양형위는 기존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군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를 신설하고, 하부에 중대산업재해치상, 중대산업재해치사의 2개 소유형을 설정하기로 했다.

수정안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중 중대산업재해치사(6조 1항), 치상(6조 2항) 및 재범 시 가중처벌(6조 3항) 조항을 새로이 양형기준 설정 범위에 추가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이들 범죄는 현재 법정형만 정해져 있다. 양형기준이 새로 설정되면 법관이 관련 형사재판에서 보다 합리적인 형을 정하도록 참고하는 기준이 마련된다.

현재 사람을 1명 이상 죽게 한 ‘중대산업재해치사’는 법정형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징역과 벌금을 함께 선고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급성중독 등에 걸린 사람을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게 한 경우 적용되는 ‘중대산업재해치상’의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아울러 중대산업재해 범죄 확정 후 5년 이내에 재범 시 형량 범위의 상한과 하한을 1.5배 가중한다.

양형위는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제정돼 2022년 1월 시행됐으므로 국민적 관심과 범죄의 중요성, 실무상 필요성, 범죄의 발생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고 사례가 집적돼 있는 범죄들을 설정 범위로 정한다”고 밝혔다.

징역형에 국한해 추가로 설정되며, 벌금형 양형기준은 예외적으로 설정한다는 원칙에 의해 제외됐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행위자와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 관련 양형기준을 마련할지도 논의됐으나, 선례가 없는 점을 고려해 일단 제외하고 향후 선고 사례 등을 검토해 추가 연구할 방침이다.

또 ‘중대시민재해’(일반 시민이 제품·시설·교통수단 등 때문에 입는 대형 재해)는 현재까지 처벌 사례가 없기에 양형기준 설정에서 제외했다.

양형위는 “기존 양형기준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의 특성을 살린 유형 분류 안을 마련했다”며 “별도 대유형을 신설해 중대시민재해치사상의 양형 사례가 축적될 경우 설정범위를 확장하기에도 쉬워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양형위의 조처는 ‘아리셀 참사’ 항소심의 ‘솜방망이 처벌’ 논란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눈길을 끌었다.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신현일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항소심에서 1심의 징역 15년을 징역 4년으로 감형했다.

박 대표는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숨진 참사와 관련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어긴 혐의를 받는다.

감형을 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한 것”이라고 규탄하는 등 논란이 됐다.

형량범위와 양형인자 등 법정형을 감형하거나 가중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추후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최근 아리셀 화재 사고 항소심에서 피해자측과의 합의가 감형 요소로 크게 반영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에 어느 정도 반영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날 양형위는 ‘응급의료·구조·구급범죄 양형기준’도 만들기로 했다.

응급실에서 의사, 간호사 등을 폭행해 다치게 하거나 숨지게 한 사람을 처벌(60조 1항 등)하는 응급의료법 위반죄, 소방대원 또는 구급대원의 구조·구급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소방기본법 위반죄,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위반죄가 포함됐다.

구체적인 양형기준은 보호대상, 구성요건, 행위태양, 법정형 등을 고려해 △응급의료종사자 폭행 등 △응급의료방해 등 △구조·구급 방해행위 등 세 유형으로 나눠 각각 감경, 가중 범위를 정하기로 했다.

애초 해당 양형기준의 큰 명칭은 ‘응급의료·구조·구급범죄’였는데, 명칭에 ‘방해’를 포함해 구조, 구급활동을 방해하는 범죄라는 뜻도 살리기로 정했다.

한편 양형위는 다음달 22일 제146차 회의를 열고 교통범죄 양형기준(설정 범위와 유형 분류) 수정안, 대부업법·채권추심법위반 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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