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노인 일자리사업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기회 이어지길”
폐플라스틱 재활용 환경개선,, 후배에게 고난도 경험 전수하는 시니어사업도 활발
노인일자리 115만개 … 높은 만족도 속 신노년 욕구 맞춤 다양한 일자리 과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계속 할 수 있으면 너무 기쁠 것”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어 좋다” “은퇴 이전의 경력과 이어지는 일자리라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시니어들은 일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밝혔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지난 7~8일 양일간 부산과 울산에서 2026년 노인일자리정책 간담회 및 관련 기관 탐방을 가졌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노인일자리 확산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주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노인일자리는 개인적 건강과 소득 확보 차원에서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행한 ‘2025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에 집계된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의 전반적 변화 수준에 따르면 전체 참여자(2985명)의 평균 점수는 4.05점(5점 만점)이다. 참여 이후 삶의 질 전반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참여 이전에 쓸 수 없던 곳에 돈을 쓸 수 있게 됨’이 4.04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짐’ 4.10점,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감·자존감이 생김’ 4.09점, ‘스스로 발전하는 기회가 됨’ 4.01점, ‘건강이 더 나아짐’ 3.99점으로 모든 항목에서 4점 내외의 고른 긍정적 평가를 보였다.
이는 노인 일자리가 단순 소득효과를 넘어 관계·정서·사회성·건강 등 다면적 생활영역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수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은 “아직 노인일자리라고 하면 교통안전 지킴이나 환경 정비같은 단순 업무라는 인식이 많다”라며 “전문성이나 경력 지역 특성을 살린 사회서비스·민간형 일자리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원장은 “민간과 공공영역에서, 기업과 구직자를 매칭해주는 플랫폼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폐플라스틱 활용, 지역환경 개선에 한몫 = 부산시 금정구에 위치한 ‘우리동네 ESG센터’는 시니어들이 폐플라스틱을 수거 세척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학생 시민들에게 환경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동네 ESG센터는 노인일자리 사회서비스형에 속한다. 2022년부터 부산에 11개 지점을 두고 있다.
7일 노인인력개발원 등의 방문한 센터에는 장남감을 분해하거나 고장난 장난감을 고치는 일, 페트병을 분쇄한 작은 조각을 사용해 조끼와 운동화를 만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아이들이 장난감을 직접 만들고 노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맥가이버’로 센터에서 불리는 이충남(67세)씨는 "기판이나 칩이 손상돼 수리가 잘 안되면 어떻게 고칠까 생각에 밤잠이 안온다"며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데 재미가 있다. 지난해에는 장남간 128개 중 125개를 고쳤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노르웨이 선급협회에서 일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최수철(66세)씨는 “아이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교육하면 너무 잘 받아들이고 재밌어 한다”며 “일하는 게 보람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다만 센터로 출퇴근하는데 너무 시간이 걸린다. 사는 지역에도 이런 센터가 생기면 좋겠다”며 노인일자리기관이 많이 생기길 바랬다.
◆오랜 현장 경험, 후배사원에 큰 도움 = 8일 방문한 울산에 위치한 고려아연에서는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30년 넘는 오랜 경험과 숙련도를 갖춘 퇴직자들이 신입사원들에게 고난도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조영렬(61세)씨는 “요즘 직원들은 이론적으로 훌륭해도 현장에서 배울 기회가 적다”며 “메뉴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오영(61세)씨도 역시 “제련소 작업은 베테랑도 긴장할 때가 많다”며 “은퇴하고 멀리서 작업공정을 보니 오히려 큰 흐림이 보인다. 후배들에게 겁먹지 말라고 다독이고 경험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의식(61세)씨는 “공장 신증설 현장에서 일하며 회사에 필요한 의견을 내고 후배 직원들에게 설비와 안전에 대한 교육을 한다”며 “AI가 못하는 숙련도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성우 고려아연 인사팀장은 “일각에서 청년일자리를 줄인다는 시각도 있지만 현장에서 소통해보면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다”며 “설비가 계속 늘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온 분들의 경험과 판단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 사업에 고려아연이 청년멘트 역할을 하는 퇴직자를 채용하는 경우 연간 1인당 300만원 인건비를 지원받게 된다.
◆민간형 일자리 식당, 맛집으로 성황 = 울산 남구에 위치한 ‘대나무향기’는 민간형 공동체사업단 일자리다. 공동체사업단은 참여 노인 1인당 연 267만원 정도 사업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일자리 참여 시니어들이 음식조리부터 고객 응대까지 맡아 진행한다. 현재 50명의 시니어들이 주 2~3일 하루 3~4시간 일을 한다.
하춘자(72세) 요리사는 “70살이 넘어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 씨는 한식당 운영 경험과 손맛을 살려 음식을 만든다. 대나무향기는 가성비 넘치는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장부터 반찬까지 모두 시니어들이 직접 만들고 맛도 좋은데 솥밥을 포함한 한상이 1만900원으로 저렴해 매일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근처에 노인일자리로 운영되는 초밥 전문점 ‘스시온’이 있다. 두 식당을 찾는 이들이 많아 이 사업을 수행하는 울산남구시니어클럽은 식자재 공수를 위해 농장도 마련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