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석 칼럼

좋은 단체장을 고르는 다섯가지 질문

2026-05-13 13:00:05 게재

대한민국의 ‘광장 민주주의’의 수준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가 오면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권력을 견제하며 역사를 바꿔왔다. 그러나 시선을 우리들의 삶터인 도시와 지역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자치 민주주의’는 뒤처져있다. 시민이 주인인 ‘민국’이 아니라 거대정당이 지배하는 ‘당국’에 가까운 현실이다.

선진국들은 오랜 시간 경제와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켜며 시민 자치의 경험을 축적해왔다. 반면 우리는 국가와 엘리트가 주도한 압축성장의 길을 빠르게 달려왔다. 경제발전에는 성공했지만 자치 민주주의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방선거는 여전히 정당공천과 인기경쟁, 그리고 개발공약 중심의 선거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왜 좋은 시장을 뽑지 못하는가. 사람을 몰라서가 아니다. 판별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의 말솜씨나 이미지, ‘무엇을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에 끌리지만 그 공약이 도시를 어디로 이끌지는 따져 묻지 않는다. 선거는 사람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인데, 정작 방향을 읽는 눈은 갖지 못한 채 투표에 임한다.

꾸리찌바, 파리, 뉴욕 단체장의 실험

다른 나라 도시들은 오래전부터 방향을 바꾸었다. 브라질 꾸리찌바를 12년 이끌었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지하철 대신 버스의 효율을 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전용차로를 갖춘 간선급행버스체계(BRT)는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구축되어 시민의 이동방식을 바꿨다. 그는 한번에 크게 바꾸는 ‘도시 수술’ 대신 작게 개입하는 ‘도시 침술’로 사람 중심의 최고 생태도시를 만들었다.

역시 12년간 파리를 이끈 안 이달고 시장은 자동차를 줄이고 보행과 자전거를 늘리는 담대한 결정을 내렸다. 센 강변 자동차전용도로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15분 도시’로 생활권을 재편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뉴욕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새로 당선된 조란 맘다니 시장은 더 빠른 무료버스와 혼잡통행료 강화, 공공주택 확대와 임대료 안정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시민의 이동과 일상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세 도시는 모두 같은 방향을 선택했다. 더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게 만드는 것, 더 빠르게 개발하는 대신 더 오래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좋은 시장은 도시의 덩치를 키우지 않고, 도시의 체질을 바꾼다. 도시를 바꾸려면 유권자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 후보들의 공약집을 받거든 다음 다섯 가지 질문으로 그가 좋은 시장인지 스스로 따져보기 바란다.

첫째, 이 공약은 지금 실행 가능한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대형 개발사업 공약은 대부분 임기 내 실현되기 어렵다. 먼 미래의 화려한 계획보다 당장 삶을 바꾸는 구체적인 변화가 더 중요하다. 막연한 ‘미래’를 말하지 않고 ‘지금’을 확실히 바꿀 사람이 좋은 시장 감이다.

둘째, 차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가. 지하고속도로 건설 공약은 교통문제 해결을 내세우지만 결국 자동차 이용을 더 늘리는 방향이다. 반대로 대중교통과 자전거∙보행 중심 정책은 자동차 의존과 탄소배출을 함께 줄인다.

셋째, 기후위기를 고려하고 있는가. 철도 지하화 공약은 지역 단절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건설 과정의 막대한 탄소배출과 유지 에너지 문제를 수반한다. 더 많은 콘크리트를 붓는 개발인지, 도시의 열을 낮추고 물순환을 회복하는 방향인지 살펴야 한다. 기후를 외면한 공약은 오늘의 편의를 위해 미래세대에게 비용과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넷째, 땅값을 올리는가, 삶의 질을 높이는가. 재개발, 용적률 상향, 대규모 건설 공약은 일부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지만 도시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거대 조형물이나 랜드마크도 시민의 삶과 무관하면 보여주기 사업일 뿐이다.

다섯째, 시민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공약의 내용만큼 중요한 게 과정이다. 주민참여 숙의 정보공개가 보장되는지, 선거 이후에도 시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할 공간을 마련했는지 살펴야 한다. 좋은 시장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이 공약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대형 쇼핑몰 유치 공약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지만 기존 상권과 자영업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달동네 재개발 공약 역시 그곳에 살던 주민보다 개발을 기대하고 땅을 매입한 사람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공약의 규모보다 방향을 먼저 봐야

이와 다른 좋은 길도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의 ‘누리재’ 방식은 오래된 저층 주거지를 작은 단위로 갱신하되, 기존 주민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계속 살게 하면서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을 함께 공급한다. 개발이 아니라 삶의 개선을 중심에 둔 해법이다.

공약은 개수나 규모보다 방향을 봐야 한다. 무엇을 바꾸는지,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번 선거는 누가 더 많은 사업을 약속하는지를 겨루기보다,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리다. 누가 도시를 바꾸는가. 질문하고 방향을 읽는 시민이 도시를 바꾼다. 도시의 미래는 시민에게 달렸다.

정 석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