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성장동력 다각화’가 시급하다

2026-05-13 13:00:06 게재

오랜 기간 ‘성장 정체 터널’에 갇혀 있던 한국 경제에 활력이 솟아나고 있다. 올해 1분기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8%나 급증하며 역대 최대인 2199억달러를 기록했다. 국가별 수출 순위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로까지 올라섰다. 증권시장에서도 ‘우(右)상향’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1년 전 2000선에 머물렀던 코스피지수가 수직 상승행진을 거듭, 7000선을 넘어서면서 국가별 시가총액 순위 세계 7위로 도약했다.

수출과 증시는 국가 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두 부문에서 낭보가 이어지고 있는 데는 반도체 활황이 결정적이다.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춘 메모리칩의 글로벌 수요 폭발에 힘입어 1분기 수출액(785억 달러)이 전년동기보다 139%나 급증했다.

반도체가 이끄는 수출과 증시 활황 낭보지만 편중은 문제

증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시장의 양대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급등이 증시 활황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 7일 기준으로 두 회사의 합산 시가총액(2848조 원)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6058조 원)의 47%에 달했다.

문제는 ‘편중’이다. 수출과 증시 둘 다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다. 나머지 대부분 업종과 종목은 상황이 좋지 않다. 1분기 수출의 경우 바이오헬스, 2차전지와 글로벌 ‘K-콘텐츠’ 붐에 올라탄 섬유제품과 화장품, 농식품 등이 상승세를 보였지만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자동차 수출은 승용차와 승합차의 큰 폭 부진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증시에서도 코스피가 7000을 뚫고 치솟은 날, 전체 상장종목의 80%는 되레 하락했다. ‘반도체 착시’에 대한 경계론이 계속되는 이유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1분기 산업활동동향은 우리 경제의 이런 취약점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1분기 제조업 생산(계절조정)이 전분기 대비 3% 증가하며 2020년 4분기(3.6%) 이후 5년 1분기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지만, 반도체 생산이 직전 분기보다 14.1%나 늘어난 결과였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0.2% 늘어나는데 그쳤다.

서비스업 부문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반도체가 이끄는 증시 초호황에 올라탄 금융·보험업 생산은 전분기보다 4.7%나 늘어나며 14분기만의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지만 나머지 업종은 심각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숙박·음식점업이 1.3% 감소하며 6분기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고,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도 3.2% 감소했다.

더 큰 걱정은 우리 경제 전반의 성장잠재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신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2%에서 올해 1.71%로 0.21%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반도체산업이 깜짝 호황을 누리고는 있지만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붐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 경제 전체의 활력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36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칠레(2.00%)와 라트비아(1.99%)에 이어 19위였고, 올해는 슬로바키아에 역전돼 20위로 더 밀려날 판이다. 이웃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장기화로 생산성 하락을 겪고 있는 슬로바키아보다도 한국의 성잠잠재력이 더 떨어진다는 얘기다.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내년에는 1.57%로 올해보다 0.14%p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가리킨다.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조선·철강·석유화학·정유 등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신산업 출현 등 새로운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결과다. 한국 경제에서 혁신이 사라졌음은 지난 20년 간 10대 수출품목 가운데 8개가 똑같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창의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규제 푸는 게 더 중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키워내려는 노력을 외면하고 당장 돈벌이가 되는 기존 산업 위주로 버텨온 결과는 잠재성장률의 2012년(3.63%) 이후 16년 연속 하락행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AI 3대 강국 도약’을 새 산업정책 목표로 내걸고 집중 육성 계획을 내놨지만 AI만으로는 안된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가장 큰 서비스산업에도 AI 못지않은 지원이 시급하다.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데는 AI산업 육성처럼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다. 시장에서 창의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게 더 중요하고, 또 시급하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