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견인한 ‘수출 잭팟’…대외악재가 ‘경기회복’ 시험대
4월수출 48% 폭증, 경상수지 흑자 기조 … 반도체·컴퓨터가 성장엔진
1분기 깜짝성장에 경기종합지수 동반 상승 … ‘수출주도’ 회복세 뚜렷
중동리스크에 물가 2.6%로 반등, 소비심리 ↓ … 내수부진 해결 숙제
취업자 증가폭 10만명 아래로 ‘털썩’ … 제조업·건설업 고용 부진 심화
정부가 중동전쟁 와중에도 경기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중동전쟁에 따른 ‘대외 리스크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국면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최근 수출실적 등을 보면 반도체를 필두로 한 IT 품목이 유례없는 호황을 기록하며 1분기 성장을 이끌었다. 다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이에 따른 민생물가 부담이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14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는 한국 경제가 공급망 시대의 ‘기술독점적 호황’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물가·고금리에 신음하는 내수시장의 엄혹한 현실을 동시에 비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4월 수출 48% 폭증 = 한국 경제의 강력한 버팀목은 단연 수출이다. 4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48.0% 증가한 858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 역시 35억8000만달러로 48%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품목별로 보면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산에 따른 ‘반도체 잭팟’이 수치로 증명됐다.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74%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했다. 컴퓨터(516%)와 선박(43.8%)이 뒤를 받쳤다. 지역별로는 최대 시장인 중국(63%)과 미국(54%), 아세안(64%) 등 주력 시장에서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이러한 수출 호조에 힘입어 3월 경상수지는 373억3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역시 4월 237억7000만달러 흑자를 달성하며 흑자 기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생산과 투자 지표도 경기회복 신호를 뒷받침하고 있다. 3월 전산업 생산은 광공업(0.3%)과 서비스업(1.4%)의 고른 성장에 힘입어 전월 대비 0.3% 증가했다. 특히 서비스업은 운수·창고(3.9%)와 금융·보험(4.6%)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설비투자 또한 전월 대비 1.5% 증가하며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경기종합지수의 움직임이다. 현재의 경기 국면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 대비 0.5p 상승했다.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0.7p 오르며 동반 상승세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가 일시적 반등을 넘어 체계적인 회복 경로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재경부는 풀이했다.
◆‘중동 리스크’의 직격탄 = 다만 장밋빛 지표 뒤편에는 ‘민생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 3월 2.2%까지 내려왔던 물가 상승률은 4월 들어 2.6%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보였음에도, 중동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이 석유류 가격을 21.9%나 끌어올린 탓이다.
물가 불안은 곧바로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4월 소비자심리지수(CSI)는 99.2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7.8p나 급락, 기준선인 100 아래로 떨어졌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에서 시작된 온기가 내수 시장으로 흐르는 통로가 막혀버린 셈이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유류세 인하와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하며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대외 변수에 따른 하방 위험은 여전히 높다.
성장률 수치와 달리 고용 현장의 지표도 우려스럽다. 4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7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 3월(20만6000명)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2024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특히 우리 경제의 허리인 20대(-19만4000명)와 40대(-1만7000명) 취업자가 줄고, 제조업(-5만5000 명)과 건설업(-8000명) 고용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점이 뼈아프다. 60세 이상 고령층 취업자(18만9000명)가 전체 고용 지표를 떠받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그냥 쉬고 있는 ‘쉬었음’ 인구 역시 전년 대비 6만3000명 늘어나며 고용 시장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밀한 내수 처방 절실 = 최근 경제동향은 한국 경제가 ‘수출 호황’이라는 기회를 맞이했지만, ‘내수 부진’과 ‘고용 악화’라는 구조적 난제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반도체가 벌어들이는 거대한 국부(國富)를 어떻게 사회 전반으로 선순환시킬 것인지, 고물가에 신음하는 서민들의 삶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지가 하반기 경제운용의 핵심 과제인 셈이다.
정부는 “중동 리스크에 대응해 비상경제 체계를 가동하고, 추경의 신속한 집행을 통해 민생 부담을 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돈을 푸는 것을 넘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구조개혁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산업 생태계 재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수출 1등’ 지표가 ‘국민행복 1등’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의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