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중국의 청정에너지 패권과 신냉전 시대
21세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두 축은 디지털전환과 탈탄소다. 그리고 이 두 흐름은 점점 하나로 수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전력수요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고 각국은 탄소중립 이행이라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이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스모그로 뒤덮인 베이징의 회색 하늘은 중국식 성장모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마주한 중국은 전혀 다른 나라다.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희토류까지, 글로벌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고리마다 중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25년 중국의 청정에너지 산업 규모는 GDP의 11.4% 수준으로 캐나다나 브라질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더 놀라운 점은 청정에너지 산업이 같은 해 중국 경제성장의 1/3 이상을 견인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철강 시멘트 부동산에서 청정에너지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를 단순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읽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시진핑 체제가 내세운 ‘생태문명’은 단순한 환경구호가 아니다. 이는 중국식 현대화 모델의 재설계에 가깝다. 그 배경에는 중국정부의 위기의식이 있었다. 전통적인 수출 주력산업에 의존한 성장모델은 환경오염, 성장률 저하, 기술 종속이라는 세 개의 벽에 부딪혔다. 청정에너지는 그 돌파구였다. 실제로 2023년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수출액은 처음으로 가전 의류 가구를 추월했다.
베이징 정상회담이 남긴 냉혹한 메시지
청정에너지 공급망 패권이 중국으로 기울면서 세계는 새로운 냉전의 문턱에 서있다. 과거의 냉전이 핵무기와 우주 경쟁을 축으로 전개됐다면 21세기 냉전은 반도체와 AI, 그리고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전장으로 삼는다. 총성 없는 전쟁이지만 그 파장은 결코 덜하지 않다.
가장 위협을 느끼는 국가는 미국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직접적인 대응 방식을 택했다. 관세와 수출통제라는 두 자루 칼이다. 그 상징이 바로 엔비디아 공방이다. 트럼프행정부는 중국용으로 개발된 저가 칩마저 사실상 수출 금지로 묶었고 ‘딥시크’ 충격이 그 방아쇠가 됐다.
며칠 전 끝난 베이징 정상회담은 이 전략의 한계를 드러냈다. 빅테크 CEO들을 대동해 기대를 키웠지만 경제 분야에서도 가시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등은 이번 회담을 관계 개선보다는 충돌과 대파탄 방지에 초점을 맞춘 사실상 ‘신냉전 관리 회담’으로 평가했다. 한때 추격자였던 중국이 이제는 미국의 대등한 경쟁자가 됐다는 사실, 그것이 베이징 회담이 남긴 냉혹한 메시지다.
역설은 여기서 발생한다.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배터리와 태양광 부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공급망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중국 손 안에 있다.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자 미국 내 태양광 설치비용은 최대 54%까지 급등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할수록 자신의 에너지 전환 비용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적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유럽의 딜레마는 경제를 넘어 정치지형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침체된 경제와 이민자 유입 등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대륙 전반의 우경화가 가속하는 형국이다. 독일에서는 극우정당이 제2당으로 부상했고,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멜로니정부는 유럽의 ‘그린딜’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해왔다.
문제는 정치적 후퇴가 만들어내는 역설이다. 그린딜이 흔들릴수록 유럽의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 의지는 꺾이고, 결국 남은 선택지는 값싼 중국산 태양광과 배터리에 더 깊이 기대는 것뿐이다. 탈중국을 외치는 극우 정치세력의 약진이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아이러니다.
기후위기 독법, ‘부담’ 아닌 ‘기회’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도 생존의 문제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트럼프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위협과 중국의 저가공세 사이에서 이중압박을 받고 있고 태양광 분야는 이미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가 서둘러야 할 것은 분명하다. AI·반도체 산업 확장에 대비한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 투자, 재생에너지 주도의 실용적 탄소중립 모델, 핵심 광물 공급망의 다변화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부담’이 아닌 ‘기회’로 읽는 시각 전환이다.
20세기 패권을 결정한 것이 석유였다면 21세기의 패권은 AI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된 배터리와 전력망, 청정에너지 공급망이 가를 것이다. 생태문명을 내건 중국의 산업구조와 에너지 전환은 이미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핵심 변수가 됐다. 우리 역시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관망할 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