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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무너진 스타머 총리, 퇴진 초읽기

2026-05-20 13:00:04 게재

지난 7일 영국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집권 노동당이 텃밭에서도 표를 잃으며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인 영국개혁당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이후 노동당에서는 키어 스타머 총리의 사임 요구가 거세다. 선거 결과를 지켜본 필자는 스타머의 사임·퇴출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잦은 정책 번복과 스캔들에다 총선 참패가 총리를 몰아내려는 결정적인 방아쇠로 작용했다.

2024년 7월 4일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은 하원의석의 2/3에 육박하는 압승을 거둬 14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1년 10개월 동안 스타머 총리는 정책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을 거듭했다. 연금생활자에 보조해준 겨울 난방비를 저소득층에게만 선별 지급으로 변경한 정책은 부족한 재정을 감안할 때 필요했다. 그러나 일부 반발이 있자 곧 철회됐다.

반면에 두 자녀까지만 자녀수당 지급은 선거공약에서 유지를 약속했음에도 번복됐다. 인기없는 정책이라도 정부 재정운용에 필요하면 설득하고 관철시켜야 하는데 우유부단하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른 몇몇 정책도 이와 유사했다. 집권 후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4월부터 영국개혁당이 정당 지지도에서 노동당을 앞서기 시작하더니 계속해서 7%p 정도 더 높다. 개혁당은 반이민, 반이슬람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집권하면 60여만명의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왕좌왕 정책혼선에 돌아선 민심

노동당이나 자유민주당과 같은 중도좌파 지지자들의 2/3가 개혁당의 정책을 인종주의적라고 여긴다. 그런데도 스타머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국은 낯선 자들의 섬이 아니다”라며 이민제한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진보 정당의 정체성을 잃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바꿨다.

여기에 성범죄자 엡스틴 스캔들도 총리를 덮쳤다. 범죄자와 교류했던 노동당의 원로 정치인 피더 만델슨을 주미대사로 임명했는데 그가 공개되지 않는 정부의 비밀까지 엡스틴에게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명과정에서 총리실의 검증 부실이 밝혀졌고 총리가 하원에서 이와 관련한 거짓말까지 했다고 비판을 받았다. 지난 2월 말부터 하원에서 대사 임명 과정에 관한 청문회가 진행중이다. 이 때부터 노동당 일부에서 스타머의 사임 요구가 나왔다.

여기에 이달 초 지방선거의 참패가 기름을 부었다. 이번주 초를 기준으로 노동당 하원의원의 1/4이 넘는 인사들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고 10명이 넘는 장차관들이 더 이상 총리와 일을 못하겠다며 사임했다. 총리가 근무중이지만 통치는 불가능한 게 현재의 정치상황이다. 스타머는 공식적으로 당수 도전이 시작되지 않았다며 끝까지 버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리의 영이 전혀 서지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당내에서 사임 압박이 폭증함을 감안할 때 오래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사임한 웨스 스트리팅 전 보건부 장관과 앤디 버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이 유력한 후임자로 부상중이다.

총리가 구체적인 사임 일정을 밝히고 당수·총리 경쟁자들에게 길을 터주는 식이 유력하다고 영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돼야 정치적 불확실성을 끝내고 집권 노동당이 다시 한번 경제성장 정책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집권당의 당수·총리가 중도에 사퇴하면 후임자가 승계한다.

유권자들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이스라엘의 이란공습을 거치면서 물가급등으로 실질임금의 계속되는 하락을 경험했다. 서민들의 삶을 보듬어주는 정책을 원했지만 노동당은 수시로 정책을 번복했고 피부로 느낄만한 성과가 별로 없었다. 집권 노동당에 너무 실망했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영국개혁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줬다. 개혁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세력 확대한 포퓰리스트 정권 장악 현실화

의회민주주의의 모국 영국은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부터 시작해 포퓰리스트들의 지속되는 세력확대와 정권장악이 점차 현실이 됐다. 총리가 교체된 후 노동당은 다시 한번 우선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유권자들이 원하는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개혁당의 약진을 막을 수 있다.

아직 총선까지 3년이 더 남았다. 긴축과 물가급등에 지친 유권자들은 더 이상 변명이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아니라 해결책을 원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