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벤처 육성을 통한 지역활성화

2026-05-20 13:00:02 게재

청년인구의 55% 가량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이러한 쏠림은 해마다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일자리와 교육 등 삶의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거주지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창업도시 조성 프로젝트’는 이에 대한 해법 중 하나인 듯하다. 4개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기술 기반의 창업 허브를 구축하고, 2030년까지 10개 창업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지역성장펀드를 마련하는 한편 신기술에 대한 규제자유특구도 지정하겠다고 했다.

겉으로 보면 수도권의 창업 동력을 지방으로 확산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구상은 여전히 지역을 나눠 특구 지정이나 인프라 구축 같은 물리적 거점을 만드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인공지능 전환과 탈공간이 지배하는 시대에 하드웨어 공급 중심의 정책이 인구·산업 축소로 기력이 쇠해진 지역경제 전체로 스며들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거점도시 벤처육성’에서 ‘벤처육성을 통한 지역 활성화’로

국내 창업 도시의 대표적 성공 모델은 판교테크노밸리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정보통신 생명과학 문화기술 분야 180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이중 85% 이상이 청년층이 주를 이루는 중소기업이다. 판교를 기반으로 창출되는 연간 매출액은 약 226조원으로, GDP의 10%에 육박한다.

판교의 성과는 입지, 인적·물적 자원, 인프라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다. 인구·기업·대학이 밀집한 수도권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우수한 교통망과 정주 여건까지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청년 인재들이 선호하고, 자연스레 민간자본 유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 공기업이 단지 조성부터 안착에 이르기까지 기반을 마련해 준 역할도 크다.

관건은 청년들이 떠나고 민간투자가 얼어붙은 지방에 판교를 닮은 창업도시를 재현할 수 있느냐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인구집중유발시설의 수도권 입지를 제한하고 있으나 디지털·탈공간 시대에는 이러한 규제로 인한 지역의 반사 이익이 뚜렷하지도 않다. 이제는 모여서 성공하던 판교의 문법을 지방에 대입할 것이 아니라 창업과 지역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보다 실용적이고 차별화된 노선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별 특화 자원의 재발견이다. 판교가 수도권의 집적 이익을 누렸다면 지방은 각자의 지리적·산업적 강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역의 도시·자연·문화 환경은 그 자체로 우수한 실증 자원이다. 이미 지방에 배치된 방위 조선 자동차 에너지 등 핵심산업 자산도 창업의 모태가 될 수 있다. 공공기관 이전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지역 고유의 문화 콘텐츠 자원 역시 지역 활성화와 창업을 함께 이끌 자양분이다.

둘째, 도시문제 해결형 ‘어반테크’의 활성화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각 도시가 안고 있는 범죄 교통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창업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곳에 리빙랩이 필요하며 도시문제 자체가 곧 창업 소재다. 특히 올림픽과 같은 국제행사는 훌륭한 지렛대다. 릴레함메르 런던 파리 올림픽은 스타트업의 혁신 제품을 실증했고 도시공간 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공공이 할 일은 데이터 개방과 규제완화 재정지원, 그리고 창의행정이다.

셋째, 잉여공간의 창업 인프라 전환이다. 저성장과 인구감소로 지방 산업단지의 빈 곳과 미분양 주택이 늘고 있으며 지방 대도시의 상가 공실률은 20%, 혁신도시는 40%에 육박한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토지 개발 규제 완화에 매달리는 전통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막대한 잉여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이를 창업과 지역재생을 연계한 거점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지자체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특화 자원, 도시문제 해결, 지역재생과 연계 필요

효율성 논리로만 따지면 수도권에 창업 동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국가 부가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하지만 소멸해가는 지역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것은 지속가능한 국가경영을 위한 시대적 책무다. 전국에 하드웨어 거점을 쪼개어 나눠주던 관성적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고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도시문제를 창업 기회로 개방하며, 유휴공간을 재생하는 유기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지역이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유병권 중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