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도시 경쟁력의 새로운 조건

2026-05-26 13:00:02 게재

도시는 언제나 기술의 발전에 맞춰 인프라를 확장하며 진화해왔다. 19세기 말 전력망은 도시를 수직·수평으로 확장시키고 24시간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20세기 말 인터넷과 21세기 모바일 기술은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네트워크 도시와 플랫폼 경제를 만들어냈다.

기술은 빠르게 교체되지만 인프라는 수십년 동안 도시구조와 산업생태계, 그리고 도시의 위상을 결정한다. 전력 수도 인터넷 같은 인프라는 결국 다른 도시기능과 산업이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었다.

도시 차원의 에너지 전략 재구성해야

지금 우리는 다시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인공지능(AI)이 있다. AI는 더 이상 특정 산업만의 기술이 아니라 교통 물류 건물 공공서비스 등 도시운영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데이터센터가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와 AI가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AI 연산은 기존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최근 “AI의 병목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결국 AI 시대 도시 경쟁력은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 기반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와 직결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중앙집중형 에너지 구조만으로는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송전망은 포화에 가깝고, 입지 갈등은 반복되며, 재생에너지는 여전히 간헐성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AI 기반 도시 시스템은 단순한 전력공급이 아니라 중단없이 지속되는 안정적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도시 차원의 에너지 전략과 인프라 재구성이 중요해졌다.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나 소형모듈원전(SMR)은 수요지 인근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재생에너지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차량기지, 철도기지, 노후 산업단지, 공항 배후지역처럼 이미 에너지와 물류 기능이 집적된 공간은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가 결합된 전략적 거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소각장이나 하수처리장 같은 시설 역시 새로운 에너지·데이터 인프라와 결합해 도시자산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미래도시 경쟁력은 에너지 인프라 수용력

중요한 과제는 사회적 공감대다. 에너지 인프라는 오랫동안 도시 외곽의 시설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역시 충분한 설명과 체험, 섬세한 제도와 정책 홍보를 통해 시민이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가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실시간 수요 변화에 더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AI 기반 교통체계, 자율주행 물류, 실시간 도시운영 시스템은 안정적이고 즉각적인 전력공급이 필수다.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 산업 기능이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결합할 경우 기본적인 전력공급을 넘어 새로운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미래 라이프스타일까지 만들어내는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에너지 인프라는 다른 모든 인프라를 작동하게 만드는 ‘인프라의 인프라’에 가깝다. 산업화 시대 전력망을 선제적으로 확장한 도시들이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듯 AI 시대 역시 안정적인 에너지 기반을 먼저 확보한 도시가 경쟁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래도시의 경쟁력은 새로운 기술보다 그 기술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확장될 수 있는 에너지 인프라와 수용력을 얼마나 먼저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나래 지속가능도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