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주 폭주에 '버블' 경고등

2026-06-01 13:00:03 게재

마이크론 등 7개사 주가가 미 증시 견인 … 골드만삭스는 AI 병목주 주목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지난달 27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컨스텔레이션 전 직원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공지능(AI) 반도체 주가 급등이 미국 증시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반도체주는 올해 S&P500에서 가장 잘 오른 업종으로 올라섰지만, 동시에 ‘AI 버블’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주가 상승이 실제 이익 증가에 기반한 구조적 변화인지, 또 한번의 반도체 경기 과열인지가 시장의 핵심 쟁점이 됐다.

블룸버그 3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최근 두달 동안 69% 급등해 사상 최고 분기 상승률을 향하고 있다. 올해 S&P500 상승률 11% 가운데 거의 80%가 단 10개 기업에서 나왔고, 이 가운데 7개가 반도체주다. 가장 큰 기여 종목은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과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다.

상승세의 중심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있다. HBM은 AI 데이터센터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핵심 메모리다. AI 서버 수요가 폭발하면서 가격이 뛰었고,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실적 전망도 올라갔다. 마이크론 주가는 올해 3배 이상 올랐고, SK하이닉스는 260%, 삼성전자는 165% 상승했다. 세 회사의 시가총액은 각각 1조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원래 경기 순환이 심하다는 점이다. 수요가 강할 때는 가격이 급등하지만, 공급이 늘어난 뒤 주문이 줄면 재고와 가격 하락이 동시에 닥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상품 성격이 강해 더 취약하다. 마이크론은 2022년 87억달러의 순이익을 냈지만, 공급 과잉이 닥친 2023년에는 58억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HBM은 일반 메모리보다 만들기 어렵고 불량률도 높아 생산능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이 때문에 AI용 메모리 부족이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용 메모리 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집계에 따르면 S&P500 내 반도체 관련 기업의 이익은 올해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리 노에데케어 영국 자산운용사 폴라캐피털 책임자는 “우리는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다’는 쪽은 아니지만, ‘더 오래 높은 수준이 유지된다’는 쪽에는 확고히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HBM 진화로 공급 측면이 바뀌었고 장기 계약 가격 구조가 자리 잡으면 경기 변동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주가 부담은 커졌다. 향후 12개월 이익 기준으로 마이크론과 저장장치 업체 샌디스크는 10배 안팎에 거래돼 싸 보인다. 하지만 과거 이익 기준으로 보면 마이크론은 46배, 샌디스크는 58배다. 반도체지수는 이익 대비 71배, 매출 대비 15배에 달해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카이 우 스파크라인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는 “반도체에서 이익의 정점이 언제였는지는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AI 투자가 어느 정도까지 계속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시장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AI 투자 둔화 조짐은 아직 크지 않다. 아마존, 메타,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4대 컴퓨팅 장비 구매 기업은 2026년 설비투자에 최대 7250억달러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이 주목할 지점은 단순한 AI 주가 상승이 아니라 ‘병목’이다. 골드만삭스의 루이스 밀러 글로벌 맞춤형 주식바스켓 책임자는 AI 관련 선호 분야로 메모리, 전력, 다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제시했다. MLCC는 AI 서버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메모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비용 항목으로 부상했다. 전력 흐름을 안정시키고 잡음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AI 관련 MLCC 현물 가격은 올해 약 20% 오른 것으로 제시됐다.

종목으로 보면 메모리에서는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샌디스크가 직접적인 수혜주로 거론된다. MLCC 분야에서는 일본 전자부품 기업 무라타제작소와 타이요유덴이 대표적이다. 전력 병목은 데이터센터 전력장비, 전력반도체, 태양광·저장장치 공급망 등으로 넓게 접근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핵심은 AI 반도체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버블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이익 증가와 공급 부족이 주가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공급 확대로 스스로 호황을 끝내온 산업이기도 하다. AI 투자가 이어지는 동안 병목 기업은 더 오를 수 있지만, 투자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희소성 프리미엄은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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