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유증 블랙홀, 미 증시 삼키나
스페이스X·앤스로픽·오픈AI 상장 … 알파벳도 대규모 주식 발행 예고
이코노미스트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스페이스X, 앤스로픽, 오픈AI 등 이른바 ‘초대형 IPO’ 3곳은 수개월 안에 미국 상장기업 시가총액을 최대 4조달러 늘릴 수 있다. 스페이스X는 750억달러를 조달해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앤스로픽과 오픈AI도 각각 최대 600억달러 규모의 IPO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 기업의 조달 규모만 합쳐도 2000억달러 안팎이다.
여기에 알파벳까지 가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알파벳은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재무구조 강화를 위해 최대 800억달러 규모의 주식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100억달러는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에 사모 방식으로 매각한다. 알파벳은 올해 자본지출을 1800억~1900억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AI 모델을 훈련하고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능력 확보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장 전체와 비교하면 미국 증시가 이 물량을 당장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셀3000 지수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79조달러, S&P500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69조달러라고 설명했다. 세 기업이 2000억달러 안팎을 조달하고 알파벳이 최대 800억달러를 발행해도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하면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2800억달러는 사우디아람코가 2019년 IPO에서 조달한 290억달러의 열배 가까운 규모다. 단기적으로 시장 붕괴를 부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승장에 들어오던 자금을 새 주식이 흡수하는 효과는 분명하다. 특히 그동안 빅테크는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며 주식 수를 줄였다. 이는 주당 가치를 높이고 주가를 지지하는 힘이 됐다. 하지만 AI 투자가 커지면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식을 줄이던 기업들이 이제는 새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앤스로픽은 이미 IPO 절차에 들어갔다. FT에 따르면 대형언어모델 클로드를 만든 앤스로픽은 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상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투자자들은 앤스로픽의 상장 기업가치가 1조달러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앤스로픽이 IPO에서 얼마를 조달할지는 아직 공식 확정되지 않았다. 회사는 최근 650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마쳤고, 이때 투자 전 기업가치는 9000억달러로 평가됐다. 지난해 3월 600억달러 수준이던 기업가치가 15개월 만에 15배 이상 뛴 셈이다.
문제는 상장 직후보다 그 이후다. 대형 IPO 기업들은 처음에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비중이 낮다. 스페이스X도 희망 기업가치 1조7500억달러를 기준으로 IPO 직후 유통주식 비율이 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면 임직원과 초기 투자자 지분이 단계적으로 시장에 풀릴 수 있다. 앤스로픽과 오픈AI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하루 만에 물량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에 걸쳐 투자자들이 받아내야 할 주식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
고평가 논란도 부담이다. 플로리다대의 제이 리터 교수에 의하면 1980년부터 2024년 사이 상장한 기업의 평균 주가가 상장 후 3년 동안 전체 시장보다 20%p 낮은 수익률을 냈다고 전했다. 매출 대비 기업가치가 40배를 넘는 기업은 시장보다 58%p 뒤처졌다. 스페이스X가 1조7500억달러 가치로 상장한다면 매출의 90배가 넘는 평가를 받게 된다.
결국 관건은 미국 증시가 돈이 필요한 AI 기업들을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느냐다. 단기적으로는 시장 규모가 워낙 커 충격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AI 기업들의 IPO와 빅테크의 유상증자가 이어지면, 그동안 주가를 밀어올린 ‘주식 부족’ 환경은 달라질 수 있다.
AI는 여전히 증시의 성장 서사이지만, 이제 투자자에게는 다른 질문이 생겼다. AI 기업들이 벌어들일 미래 이익이, 당장 시장에서 빨아들이는 막대한 자금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