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 모두의 잔치 아니다

2026-06-04 13:00:04 게재

엔비디아·마이크론이 끌어올린 호황 … GPU·HBM 제외하면 평범한 사이클

2024년 4월 26일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CEO가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업황이 다시 슈퍼사이클 논쟁에 들어섰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했고, 관련 기업 주가는 새 고점을 향하고 있다. 다만 업종 전체가 같은 속도로 구조적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이라는 두 종목을 빼면 반도체 업황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된 평범한 상승 사이클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 오피니언의 슐리 런 칼럼니스트는 2일(현지시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둘러싼 핵심 질문이 “일시적 유행인가, 장기 추세인가”라고 짚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형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호황기에는 이익이 급증하고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 보여도, 불황이 오면 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지표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메모리 기업을 볼 때 PER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더 신뢰해왔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수요가 짧게 꺾이는 시장이 아니라, AI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3~5년짜리 환불 불가 장기 계약을 맺고 칩 공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UBS그룹에 따르면 D램 출하량의 20~30%가 이런 계약으로 묶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UBS의 티머시 아르쿠리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론의 주당순이익이 2027~2029년 100달러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목표주가를 1625달러로 올렸다. 이는 직전 금요일 종가보다 67% 높은 수준이다. 그는 이 기간 마이크론의 잉여현금흐름이 4000억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봤다. 지난 10년간 마이크론이 창출한 잉여현금흐름은 160억달러에 그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같은 논리 위에 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HBM은 일반 D램보다 가격과 수익성이 높고, 공급도 단기간에 크게 늘리기 어렵다. 한국 증시에서 두 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급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블룸버그는 장기 계약의 세부 조건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과 맺은 계약은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외부에서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고, 시장이 기대하는 이익이 실제로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 언헤지드의 로버트 암스트롱 칼럼니스트도 반도체 호황을 더 잘게 나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구성 기업의 매출을 분석하면서 2024년 이후 성장률이 급격히 높아졌지만, 대부분은 GPU 기업 엔비디아와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이 끌어올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를 제외하면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흐름은 과거 사이클의 고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암스트롱은 이를 두고 반도체 업종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넓게 보면 정상적인 반도체 호황이고, 그 위에 특정 하위 업종의 집중된 슈퍼사이클이 얹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체 반도체 산업이 한꺼번에 장기 호황에 들어섰다기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꼭 필요한 GPU와 메모리 병목 부문에서 훨씬 강한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AI 투자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이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FT는 미국의 정보 장비와 소프트웨어 투자가 2025년 초부터 뚜렷하게 늘었다고 봤다. 다만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부품 상당수가 수입품이어서 국내총생산(GDP)에는 수입 증가라는 마이너스 항목도 함께 잡힌다. AI 투자가 미국 성장을 사실상 혼자 떠받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은 단순화라는 뜻이다.

결국 반도체 슈퍼사이클 논쟁의 핵심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슈퍼사이클이냐’에 있다. 엔비디아의 GPU와 HBM·D램 등 AI 데이터센터의 병목이 걸린 분야는 과거보다 긴 수요 사이클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크다.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장기 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장비, 아날로그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범용 칩까지 모두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AI 수요가 강한 것은 분명하지만, 공급이 늘고 고객 투자가 둔화되면 반도체 산업 특유의 사이클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업종 전체의 일괄적 슈퍼사이클이라기보다, AI 병목 부문에서 나타나는 집중형 슈퍼사이클에 가깝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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