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이후 원화 약세 폭 주요국 통화 대비 가장 커
이란의 쿠웨이트 공격…재부각되는 미국 관세 부과 이슈
외국인 투자자들 20거래일 연속 대규모 주식 매도 영향
원달러 환율은 5일 개장 직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1540원을 넘겼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지며 시장에는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휴전이 위태롭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무력 충돌도 이어지며 중동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20거래일 연속 대규모로 주식을 팔아치우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영향이 크다. 이런 가운데 중동전쟁 이후 원화 약세 폭은 주요국 통화 대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17년 만에 최고 수준 = 5일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1,540원을 넘어섰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날 주간 거래 종가보다 0.7원 내린 1,529.0원에 개장한 이후 방향을 틀어 상승 폭을 키우고 있다. 전일 야간 거래에서는 오후 5시 6분께 야간 거래 장중 1540.30원까지 오른 뒤 이날 오전 2시 1,53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중동전쟁 장기화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 등이 환율을 계속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원화 약세는 주요국 통화 대비 유독 큰 상황이다. 지정학적 위험 확대와 미국 경제지표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가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최근 원화 절하 폭은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전규연 하나증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주요 통화 중 원화의 절하 폭이 5.8%로 가장 큰 상황이다. 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지난달 원화는 미 달러 대비 1.8% 절하되며 주요 통화 중 약세 폭이 가장 컸다. 이달 1~4일에도 1.4% 추가 절하됐다. 원화 실질실효환율 Z-스코어 값은 -2.3으로 평균에서 2.3 표준편차만큼 떨어져 있어 일반적인 범위보다 상당 수준 절하된 것으로 나타난다.
◆무엇이 원화를 약하게 하나 = 시장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 원인에 대해 재부각되는 미국 관세 부과 이슈와 대미 직접투자 영향,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 등을 꼽았다.
전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중국, 일본 등 54개 교역국에 1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점이 환율 상승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약정도 문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아직 본격적으로 투자가 집행되기 전이지만 기업과 같은 경제주체나 외환시장 참여자들에게 은연중에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며 “미국에 투자를 약정한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에 대규모로 수출을 하는 기업들인데, 현지 통화인 달러로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는 만큼 최근 수출입이 크게 늘었다고 해도 국내로 자금을 가지고 들어올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주식 매도 = 정용택 이코노미스트는 원달러 환율의 이례적인 움직임에 대해 중동전쟁 리스크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올해 2월 하순 1달러당 1420원대까지 하락했던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직접적인 동기는 2월 말 발생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과 이로 인한 국제 유가 폭등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외국인 주식 매도 흐름이다. 외국인 주식 매도와 매수 흐름은 우리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인의 비중만큼 중요한 환율 변동 요인으로 작용해 왔는데, 5월 중순 이후에는 일평균 3조원 수준으로 매도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며 한국은행 총재가 환율 급등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5일 오전 9시 53분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8851억원 순매도하며 지난달 7일 이후 이날까지 20거래일 연속 ‘팔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역대 9번째로 긴 순매도세이자, 2020년 3월 5일~4월 16일(30거래일 연속 순매도) 이후 6년여 만의 최장 기록이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도 986억원 순매도 중이다. 전날 외국인의 순매도액(6조 9,880억 원)은 역대 두 번째로 많았는데, 외국인은 이날도 ‘팔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날 코스피는 대형 반도체주 약세에 휘청이며 장 초반 6%대의 급락세를 보여 장중 8100선마저 내줬다. 외국인이 20거래일 연속 ‘팔자’를 이어가며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40.31포인트(3.84%) 내린 1009.42에서 거래 중이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