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세탁기가 전력 피크 좌우한다
고려대 연구팀, 가전별 맞춤형 수요반응 보상체계 제안
전력 사용을 줄인 가정에 높은 보상을 지급할수록 전력망이 안정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과도한 보상이 또 다른 전력 사용 집중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구팀은 에어컨·세탁기 등 가전제품별 특성을 반영한 차등 보상 방식이 전력망 안정에 더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우종률 교수 연구팀은 가정용 수요반응(DR) 제도를 분석한 결과, 모든 가전에 동일한 보상을 지급하는 현재 방식보다 가전 종류와 시간대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것이 전력 수급 안정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수요반응은 전력 사용이 집중되는 시간대에 소비자가 전기 사용을 줄이면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다. 태양광 발전 확대에 따라 낮에는 전력이 남고 해가 진 뒤에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수요반응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연구팀은 전국 1124가구를 대상으로 TV와 세탁기, 건조기, 전기밥솥, 식기세척기, 에어컨, 히터 등 7개 가전에 대해 사용을 미루는 조건과 보상 수준, 사용 시점 변화 등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에어컨과 히터는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이 필요했지만 TV와 전기밥솥은 비교적 적은 보상으로도 참여 의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급률이 높고 소비전력이 큰 에어컨과 세탁기가 전력 부하 이동 효과가 가장 큰 핵심 가전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조사 결과를 실제 수요반응이 시행된 2023년 8월 7일 전국 전력 수요 자료에 적용해 시뮬레이션했다. 현행 수준인 1킬로와트시(kWh)당 1500원의 보상을 적용할 경우 저녁 시간대 전력 수요는 약 9.3%(8101MW) 감소했다 하지만 미뤄진 전력 사용이 오후 9~10시에 집중되면서 1042MW 규모의 새로운 피크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상 수준을 500원으로 낮추자 피크 감소 폭은 1.8%(1605MW)로 줄었지만, 사용량이 여러 시간대로 분산돼 전력망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연구팀은 과도한 보상이 오히려 전력 수요를 특정 시간대에 집중시키는 ‘풍선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실제 가구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전별·시간대별 맞춤형 보상체계의 필요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수요반응으로 줄어든 전력 사용이 다른 시간대로 이동해 새로운 피크를 만드는 현상을 정량적으로 확인했다.
우종률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망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가전 특성과 가구 유형, 시간대별 전력 수급 상황을 반영한 맞춤형 인센티브 설계가 탄소중립 시대 전력 시스템 안정성 확보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에너지·환경 분야 국제학술지 ‘유틸리티스 폴리시(Utilities Policy)’에 게재됐다.